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002
영어공식명칭 Gwangneung forest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부평리 246-4]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왕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68년 - 천연 동식물이 숨 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 광릉 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3년 - 천연 동식물이 숨 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 임업 시험지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7년 - 천연 동식물이 숨 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 광릉수목원 개원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 천연 동식물이 숨 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 광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천연 동식물이 숨 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재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산림 공원.

[개설]

광릉숲국립수목원의 모태이면서 조선 왕조 7대 국왕인 세조(世祖)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의 능침인 광릉(光陵)의 부속림 등이 포함된 산림 공원이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광릉광릉숲을 역사·문화 자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인문학 도시이다. 광릉숲의 조선 왕릉은 한국을 대표하는 왕실 문화의 산실로서 왕조 고유의 의례와 건축 양식의 전통을 보여 주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국내 산림 연구의 중심이며, 세계적으로 온대 북부 지역에서는 다소 희귀한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경기도 남양주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힐링 코스이면서, 경기도 남양주시의 유래가 되는 역사와 자연 문화를 시각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남양주 시민들이 8경 가운데 2경으로 선정할 만큼 관내 인지도가 높으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국내외적으로 왕릉 문화 및 산림 연구를 위한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상징적인 미래 유산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광릉의 조림]

‘광릉숲’이라는 명칭은 1468년(세조 14)부터 역사에 등장한다. 조선 왕조의 제7대 국왕인 세조정희왕후의 능침이 만들어지고, 능역에 조림이 이루어진 것이 유래이다. 조선 시대 왕릉 영역에는 능침을 보호하기 위한 식목(植木)이 진행되었고 관원을 배치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기까지 했으므로, 광릉숲은 조선 왕조의 계획된 인공 조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적 과학 기술이 도입된 현대에 이르러 수목원이 개설되었지만, 전통적 조림 방법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광릉의 관리와 유지는 지역민이 담당하였으므로, 광릉숲의 역사는 경기도 남양주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릉세조가 훙한 1468년에 조성되고, 정희왕후가 훙한 1483년(성종 14)에 다시 한 번 정비되었다. 국왕과 왕비가 합장된 왕릉인 만큼 광릉은 풍수적으로 수려한 지역에 건설되었다. 1792년(정조 16) 정조가 축석령을 거쳐 광릉에 능행하면서 능침의 산세와 형국이 최고임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말할 정도로 왕실에서 주목하던 왕릉 지역이기도 했다.

광릉은 여타의 조선 왕릉과 비교할 때 외형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왕실의 애민 정신과 근검절약의 사례가 왕릉 조성에 반영되어 있다. 세조가 능침의 비용을 절감하려는 의도에서 이전부터 왕릉에 배치하던 석실과 병석(屛石)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석실은 회격(灰隔)으로 변경해서 만들었고, 12지상은 병석 대신 난간동자석주(欄干童子石柱)에 각석되었다. 세조의 의중은 후대 국왕들에게도 계승되었다. 1789년(정조 13) 정조는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광릉의 사례를 원용하였다. 광릉 이전에는 국왕과 왕비의 능침을 나란히 배치하는 쌍릉이나 합릉이 일반적인 양식이었으나, 광릉은 각각 다른 장소에 능침을 배치하는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을 사용하였다. 두 능침은 제사를 올리는 하나의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공간 구조를 보이고 있다. 조선 전기 왕릉 제도의 변화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역사 유산인 셈이다.

조림은 광릉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안이었다. 1796년(정조 20)에 작성된 「광릉지」에 의하면, 광릉의 관원들은 매일 혹은 격일 또는 3일마다 조림 지역을 순찰하여 나무의 벌채와 인근 거주민에 의한 농작물 경작을 방지하였다. 능침의 관리 다음으로는 광릉 수목의 보존이 중시되었다. 수목의 보존을 위해 능침 영역의 사방 경계에 사표(四標)를 세우고, 수목의 벌채를 금지하며 육림(育林)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금양(禁養)을 거행하였다. 사표 인근 10개 고을에는 두두인(頭頭人)을 1명씩 두었는데, 두두인들은 화재 예방·투장이나 경작 금지·땔나무 채취 금지 등 모두 4개 주요 소임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도산직(都山直)이라는 청호(廳戶) 6명과 산지기 6명을 두어 산림 보호를 효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도산직은 나무의 벌채를 금하는 것이 주요 임무로서 나무꾼의 출입을 엄금하였으며, 한식 전 2일에 소나무와 잣나무의 묘목을 심었다. 1739년(영조 15)에는 광릉의 나무를 벌채한 자를 한양으로 압송하여 벌을 주기까지 할 정도로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산지기는 2명이 윤번제로 2일마다 주변 산을 순찰하였다. 이들 능침의 수호군은 국역을 면제 받고 조림 관리에만 종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광릉숲 보존의 선구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능관(陵官)이 오늘날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해당하는 지역의 금양(禁養)을 담당하게 하면서 아울러 매년 광릉에 식목하게 하였는데, 1799년(정조 23)에는 200그루에 달하는 잣나무와 잡목을 심도록 한 사실도 확인된다. 이러한 보존 작업이 정조 대를 거쳐 고종 대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으로 이어져서 오늘날의 광릉숲이 존재할 수 있었다.

[수목원의 설립과 광릉숲 생태계의 보존]

광릉숲은 수목을 위한 근대적 임업 기관이 설립되면서 과학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왕조는 왕릉의 보호를 위해 나무를 심고 관리했으며, 벌목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임업 관련 기관이 설립된 뒤에는 경기도 남양주 지역의 식생에 적합한 나무를 선정하여 식목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경기도 남양주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의 임업을 담당하는 산실이 구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부터 근대 임업 기관의 설립까지 일관되게 광릉숲의 조성에 진력한 것은 인공림이었다. 왕릉의 식목도 기존의 나무들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종을 선택하여 인공적으로 심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광릉숲의 조림은 근대의 과학적 임업 사업에 의해서만 구축된 것이 아니라, 왕릉 수목을 엄격하게 관리해 온 조선 왕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조선 왕조의 조림 관리 전통은 일제 강점기에도 지속되었다. 1911년 국유림 구분 조사에서는 갑종요존예정임야(甲種要存豫定林野)로 선정되어 숲의 보존이 지속되었는데, 광릉숲이 보존된 것은 1914~1917년에 식수되었다는 둘레 1m, 높이 20여m의 낙엽송 팻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13년부터 광릉숲 일대가 임업 시험지로 지정되어 산림 식산의 중심이 되면서 전시림이 육성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6·25전쟁기를 거치면서 수목원의 기능이 잠시 정지되었으나, 다행히 숲의 훼손은 크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이 유치된 것을 계기로 수목원의 조성이 본격화 되기 시작하였다. 1987년 광릉수목원이 문을 열었고, 이에 따라 광릉숲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진 동시에 보전을 위한 생태 환경 연구도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외국수목원, 고산수목원, 습지식물원, 화목원, 관상수원 등이 안정적으로 조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1년에는 청량리 본원의 야생 동물들을 이관하여 산림동물원을 설립하였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국토 녹화 기념탑’이 세워져 수목원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이 되었다.

광릉숲은 고유한 식생의 군집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해당 숲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들에 ‘광릉’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경우가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광릉갈퀴, 광릉요강꽃,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천연기념물인 크낙새장수하늘소, 하늘다람쥐 등의 서식지가 광범위하게 펼쳐진 생태 공간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에서도 대규모의 훼손이나 큰 화재를 당하지 않아 인공적으로 조성된 산림은 자연림으로 여겨질 만큼 잘 보전되었다. 광릉숲을 대표적인 식생으로는 천연 활엽수림인 서어나무·갈참나무·신갈나무·졸참나무 등이 있으며, 180종의 조류와 32종의 포유류, 3,986종의 곤충류가 서식하고 있다. 국내에서 숲의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선정된 남양주 시민들의 휴식처]

광릉숲은 남양주 시민의 휴식 공간이면서 모두를 위한 생태 학습의 체험 공간이기도 하다. 2010년 6월 2일,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 Man and the Biosphere Programme] 국제 조정 이사회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의 광릉숲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하였다. 인간과 생물권 계획 사업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지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동식물, 대기, 해안 등의 자연 및 인간을 포함하는 전체 생물권에 인간이 미치는 영향의 연구와 능력을 배양시킬 목적으로 유네스코가 추진하고 있는 범 정부 간 프로그램이다. 광릉숲은 설악산, 제주도와 신안 다도해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로 선정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은 생물 다양성의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지정하는 것으로 경기도 남양주시의 광릉숲이 지니는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생물 다양성을 인정받은 것은 조선 왕조부터 관(官)에서 엄격하게 관리하여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던 환경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된 결과이다. 광릉숲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 혹은 제한된 상황에서 체계적인 조림 사업을 지속한 것도 생물 다양성을 지닌 자연림 형태라고 생각하게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광릉숲 가운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은 핵심지역[Core zone]인 소리봉과 죽엽산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 극상림 지역, 완충 지대[Buffer zone]인 국립수목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 시험림, 문화재청 소관 능림, 봉선사 사찰림, 전이 지역[Transition zone]인 경기도 남양주시와 인근 지역 등의 3개로 구성되어 있다.

광릉숲의 외곽에는 2017년부터 추진한, 경기도 남양주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둘레길이 구축되어 있다. 둘레길은 총 8개 코스이며, 1코스부터 8코스에 이르기까지 각각 옛사랑길·중말고갯길·용암산정상길·고모리산성길·왕숙천물내음길·죽엽산길·산림욕길·고모리길 등의 명칭이 붙었다. 2020년 경기도에서는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의 새로운 이름을 공모하였고, 그 결과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이라는 명칭이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은 광릉숲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봉선사에서부터 광릉, 국립수목원 등을 거쳐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센터까지 총길이 4㎞에 달하는 숲 길이다. 광릉숲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중앙에 있는 핵심적 생태 공간이면서 외부의 경계를 이루는 자연 탐방로까지 구성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지역의 시민이 늘 삶의 휴식과 힐링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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