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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국과 음즙벌국 간 영토 분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34
한자 悉直國-音汁伐國間領土紛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02년(파사이사금 23)연표보기 - 실직국과 음즙벌국 간 영토 분쟁

[정의]

고대 삼척 지역에서 벌어진 실직국음즙벌국 간 영토 분쟁.

[개설]

강원도 삼척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실직국은 서기 102년 경상북도 안강 부근에 있던 음즙벌국과 영토 분쟁을 벌였다. 그러나 두 나라 간 거리를 감안할 때 영토 분쟁이 두 나라의 지경에서 벌어진 직접 충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추측건대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 장악을 둘러싼 두 나라 간 갈등과 대립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토 분쟁의 시말]

『삼국사기(三國史記)』 102년(파사이사금 23)에는 당시 삼척 지역에 있던 초기 국가 실직국(悉直國)과 경상북도 안강(安康) 부근에 있던 음즙벌국(音汁伐國) 간에 벌어진 영토 분쟁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두 국가 사이에 영토 분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사로국[신라] 파사이사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파사이사금은 자신이 영토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난처하게 여겨서 금관국수로왕에게 자문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수로왕은 분쟁 대상이 된 땅을 음즙벌국 소속으로 결정하였다.

[영토 분쟁의 진위 논란]

실직국음즙벌국 두 나라 간 영토 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역사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와 인정하는 견해가 양립하고 있다. 역사 사실로 믿기 어렵다는 쪽은 두 나라 간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영토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토 분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쪽은 삼척에 위치한 실직국의 영토 범위를 청하·경주 부근까지로 추정하거나 아예 실직국의 위치를 삼척이 아닌 경주·흥해 부근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영토 분쟁 대상이 된 곳이 어느 지역이냐에 대해서는 경주 부근설과 울진·영덕 지역설이 제기되었다. 이 밖에도 두 나라 간 영토 분쟁을 역사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면서도 그 사건이 벌어진 시기를 102년이 아닌 3세기 중반 이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영토 분쟁의 의미]

실직국이 삼척 지역에 위치한 것은 확실한 만큼 두 나라 간 거리나 당시의 국가 발전 정도 등을 감안할 때 영토 분쟁이 두 나라 지경(地境)에서 일어난 직접 충돌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북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 장악을 둘러싼 두 나라 간 갈등·대립 과정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즉 실직국이 경상북도동해안에 위치한 청하·흥해 지역의 항구에 교두보를 확보하여 교역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음즙벌국과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실직국이 경주의 사로국과 일정한 정치 교섭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영토 분쟁은 실직국이 사로국을 왕래할 때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음즙벌국 영토 통과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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