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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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悉直國 |
영어공식명칭 | Siljikguk |
이칭/별칭 | 실직곡국(悉直谷國),실직씨지국(悉直氏之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고대 삼척 지역에 존재한 초기 국가.
[개설]
삼척 지역에 위치한 초기 국가인 실직국(悉直國)은 경주의 사로국(斯盧國)[신라(新羅)]과 일정한 정치·경제 관계를 맺고서 강원도 및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을 장악하여 갔다. 이 과정에서 경상북도 청하·흥해 지역의 항구 확보를 둘러싸고 안강에 있던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영토 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를 보면 실직국의 활동 권역이 남쪽으로는 경주 부근까지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직국은 102년 사로국에 항복하였다.
[실직국의 위치]
실직국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지배·피지배 관계가 생겨나면서 각지에 정치체가 출현하였을 때 삼척 지방에 존재한 작은 나라이다. 실직국은 자료에 따라서는 실직곡국(悉直谷國), 실직씨지국(悉直氏之國)으로도 불리었다.
실직국의 정치·경제 중심이 된 읍락은 지금의 삼척시 사직동(史直洞)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실직이 사직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 후기 문신 허목(許穆)[1595~1682]은 1662년(현종 3)에 편찬한 『척주지(陟州誌)』에서 사직은 옛 실직씨지국(悉直氏之國)이라 하였고, 심의승(沈宜升)은 1916년에 편찬한 『삼척군지(三陟郡誌)』에서 사직은 실직의 또 다른 표기라고 하였다.
여기다가 심의승은 1916년 당시 사직리(史直里)에는 실직곡(悉直谷)을 가리키는 ‘실즉골’, ‘실젹골’, ‘시젹골’, ‘시덕골’ 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현 사직동 일대에 있던 읍락 중심으로 주위의 다른 읍락들과 결합하여 실직국이라는 소국(小國)을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직국과 음즙벌국의 영토 분쟁]
삼척 지방에 위치한 실직국은 당시 진한(辰韓) 연맹체의 맹주 격인 경주의 사로국(斯盧國)과 일정한 정치·경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음과 같이 102년(파사이사금 23) 8월 실직국과 경상북도 안강 부근에 있던 음즙벌국(音汁伐國) 사이에 벌어진 영토 분쟁과 해결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직국과 음즙벌국 사이에 영토 분쟁이 벌어졌다. 결국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여 사로국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112, 신라 제5대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파사이사금은 자신이 두 나라 간의 영토 분쟁 해결을 난처하게 여겨 금관국수로왕에게 자문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수로왕은 분쟁 대상이 된 땅을 음즙벌국 소속으로 결정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실직국은 경주의 사로국과 일정한 정치·경제 교섭 관계를 맺고 어느 정도 그 세력 범위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실직국과 음즙벌국 간 영토 분쟁이 두 나라 지경(地境)에서 일어난 직접 충돌로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경상북도동해안 일대의 해상 교역권 장악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실직국이 경상북도동해안 지역인 청하·흥해의 항구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교역 체계를 구축하려는 과정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인 음즙벌국과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직국이 경주의 사로국과 정치 교섭 관계를 맺고 사로국의 세력 범위 안에 속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영토 분쟁은 실직국이 사로국을 왕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음즙벌국의 영토 통과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실직국은 사로국을 왕래할 수 있는 확실하고 안전한 교통로를 음즙벌국 영토 안에서 확보하려 하였을 것이고, 여기에 음즙벌국이 이의를 제기하여 영토 분쟁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실직국의 활동 권역]
음즙벌국과의 영토 분쟁을 통해 당시 실직국의 활동 권역이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청하·흥해 지역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북쪽으로는 강원도 강릉의 예국(穢國)[동예(東濊)]과 경계를 이루었을 것으로 보이는 현 강릉시 옥계 지역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보면 실직국의 활동 범위는 경주 부근에서 강릉시 옥계에 이르는 동해안의 대상(帶狀) 공간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실직국이 경상북도동해안 지역에 대해 실효 지배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강원도와 경상북도동해안 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은 실직국은 중부 동해안 일대에서 해상 교역권을 장악하고 옥저(沃沮)·동예(東濊)·낙랑(樂浪) 등 북방 세력이나 진한·변한(弁韓)의 소국들과도 해상 활동을 통한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산국(于山國)과도 일정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직국의 사로국 항복]
실직국은 음즙벌국과 영토 분쟁을 빚은 해인 102년에 압독국(押督國)과 함께 사로국에 항복하였다. 실직국이 어떤 연유에서 신라에 항복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사로국이 주변 소국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정치 교섭 관계를 맺고 있던 실직국에 더 진전된 신속(臣屬) 관계를 맺을 것을 강요하고 실직국이 이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