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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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悉直國-自進降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배재홍 |
[정의]
삼국시대 초기의 소국인 실직국의 항복.
[개설]
삼척 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초기 국가인 실직국이 102년(파사이사금 23) 당시 사로국이던 신라에 자진 항복하였다. 신라는 복속된 실직국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고 공납을 매개로 신속 관계를 맺고는 간접 지배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04년(파사이사금 25) 실직국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남으로써 신라는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였다. 이후 실직국 지역에는 기존의 토착 지배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반면에 친신라 세력이 점차 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직국의 자진 항복]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삼척 지역에 있던 초기 국가인 실직국(悉直國)은 음즙벌국(音汁伐國)과의 영토 분쟁이 일어난 서기 102년에 압독국(押督國)과 함께 당시 사로국(斯盧國)이던 신라(新羅)에 항복하였다. 당시 사로국이 음즙벌국을 무력으로 정벌하여 항복을 받아내자 실직국과 압독국이 자진해서 항복한 것이다.
이러한 실직국의 항복을 102년이 아닌 3세기 중반 이후의 역사 사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3세기 중엽까지도 진한(辰韓)을 구성한 소국들이 아직 독립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2세기 초에 사로국이 삼척 지역까지 영역을 확보하였다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실직국이 어떤 연유에서 스스로 사로국에 항복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사로국이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정치 교섭 관계에 있던 실직국에 좀 더 진전된 신속(臣屬) 관계를 맺을 것을 강요하여 이를 실직국이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직국의 항복이 사로국이 음즙벌국에 대한 무력 정벌 이후에 있었던 것을 보면 실직국은 사로국의 무력 정벌이라는 위협 아래에서 자진 항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실직국 지역 지배 방식]
실직국이 자진해서 항복한 만큼 사로국은 복속된 실직국 지역을 지방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켜서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의례에 그친 공납(貢納)을 매개로 지배-피지배의 신속 관계만 맺고는 기존의 실직국 토착 지배 세력의 자치를 허용하는 간접 지배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실직국 지역의 반란]
실직국이 사로국에 항복한 2년 후인 104년 7월에 실직국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사로국은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였다. 사로국의 강제 통합에 대한 실직국 지배 세력의 저항인지 실직국 지배 세력의 사로국 항복에 반대하는 세력의 반발인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사로국이 지금까지 실직국의 지배 세력이 누리던 기득권, 예를 들면 동해안 해상 교역권 등을 급속히 잠식해 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반란을 일으켰을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다.
사로국은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 반란을 일으킨 잔여 무리를 사로국 남쪽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켰다. 이 반란이 진압된 이후 실직국 지역에는 기존의 토착 지배 세력의 기득권과 독자성은 크게 약화되고 반면에 친사로국 세력이 점차 부식(富殖)·강화되어 갔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