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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38
한자 悉直州
영어공식명칭 Siljik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505년(지증왕 6)연표보기 - 실직주 설치
개정 시기/일시 757년(경덕왕 16)연표보기 - 삼척군으로 개명(改名)

[정의]

신라 지증왕대에 삼척 지역을 고구려로부터 회복한 후 설치한 지방 행정 조직.

[개설]

동해안 지역을 상실한 신라는 5세기말 전후에 들어와 실직 회복에 나서서 고구려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신라 영토로 회복하여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6년조에 “2월에 왕은 친히 국내의 주·군·현의 제도를 정하고 실직주를 설치하여 이사부를 그 군주로 삼았는데 군주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가 지방 행정 구역인 주를 설치하고 군주라는 중앙에서 파견된 행정관을 두었다는 것은 완전히 신라의 판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가 새롭게 수복한 삼척 지역에 대한 통치 효과를 보기 위하여 지방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6년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증마립간 6년(505) 봄 2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군(郡)·현(縣)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의 명칭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내용]

신라가 실직주를 설치한 영역은 동해안의 긴 해안선을 따라 삼척시에서 영덕 남쪽 청하까지였다. 이는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실지(悉支), 실직(悉直)주 및 현·촌명(村名)과 관직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삼척시, 울진군, 영덕군 지역이 실직주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천]

동해안에서 강한 세력을 형성한 실직국은 파사왕 이후 신라의 영향 아래 신라문화권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서 실직이 확실한 신라의 영토로 된 것은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파견하면서부터이다. 512년(지증왕 13)에는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복종시켜서 따르게 함으로써 동해안 일대는 완전한 신라의 영역이 되었다.

이후로도 실직은 동해안의 정치·군사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것으로 확인된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鳳坪里新羅碑)’에 보이는 형 집행의 총책임자로서의 실지도사 관명과 통일 이전 신라의 군사 조직인 6정의 하나로 실직정(悉直停)이라는 군단이 설치된 점 등을 그 증거로 들 수 있다.

그 후 658년(태종무열왕 5)에는 639년(선덕여왕 8)에 북소경(北小京)으로 삼은 하슬라(何瑟羅) 땅이 말갈과 붙어 있어 백성들이 편안할 수 없다 하여 소경을 없애고 주로 삼아 도독을 두어 다스리게 하는 한편 다시 실직을 북진(北鎭)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실도 삼척시가 그만큼 중요시된 지역이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한편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757년(경덕왕 16)에 지방 제도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改名)하여 태수로 하여금 다스리게 한 이후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지증왕대에 처음 주를 둔 가운데 이의 시작이 실직주 설치와 군주 파견이란 점은 신라의 지방 제도 발달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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