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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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劇場襲擊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재홍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46년 3월 15일 - 삼척극장 습격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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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정건화|박준용|삼척우국동지회|민주주의민족전선 |
[정의]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삼척 지역 우익 세력의 삼척극장 습격사건.
[개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삼척 지역에서도 찬반을 둘러싸고 좌·우익 세력 간 갈등과 대립이 격해져 갔다. 그 와중에 1946년 3월 15일 삼척읍 내 삼척극장에서 개최된 좌익계 단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삼척 지역 대회장에 우익 세력이 습격함으로써 아수라장이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역사적 배경]
1945년 12월 소련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소련, 영국 등 3개국 외상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5년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남한 전역에서 일제히 반탁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소련의 지령을 받은 좌익 진영은 곧 찬탁으로 태도를 돌변하였다. 이 때문에 찬탁·반탁을 둘러싸고 좌익 세력과 우익 세력 간 갈등과 대립은 격해져 갔다.
이에 따라서 삼척 지역에서도 우익과 좌익 세력 간에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빚어졌다. 당시 삼척 지역 좌익 계열은 건국준비위원회 참여 인물들이 중심이었다. 주요 인물로는 정건화, 박준용, 정세장, 정인장 등이 있었다. 반면에 우익 계열은 반탁 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주요 인물은 김동석, 임용순, 한철, 이규진, 김중열, 임윤봉, 권상범, 김양국 등이었다.
[경과]
광복 공간에서 삼척 지역은 좌익 세력이 행정과 치안을 장악하였다. 이는 좌익계 인사인 정인장과 정세장이 각각 군수와 경찰서장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좌익 세력은 우익 계열 인사를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였다. 심지어는 군정 당국이 임명한 군수의 부임을 막고 쫓아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좌익 세력에 대하여 우익 세력은 1946년 1월에 삼척우국동지회(三陟憂國同志會)를 결성하여 맞섰다. 이들은 이른바 북평읍 쇄운리 사건을 일으켜 삼화제철공사 내의 좌익계 인사를 체포해서 살해하기도 하였다.
우익 세력은 또 1946년 3월 15일 삼척읍 내 삼척극장에서 개최된 좌익계의 민주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삼척 지역 대회장에 400~500명을 동원한 가운데 포위 및 습격함으로써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다 좌익계 인물 정건화와 박준용을 구타하기까지 하였다.
[결과]
1946년 3월 15일 우익계는 삼척극장 습격사건 이후 좌익 세력을 제거하기로 하였다. 군정 고문으로 위촉받은 김진구가 도경 보안과장 신옥철과 도경 감찰관 강준의 도움을 받아 좌익 계열 행정 책임자인 정인장, 경찰 책임자인 정세장을 춘천으로 유인해서 체포하였다. 이후 강준이 삼척경찰서장에 정식 임명되어 치안을 담당하였다. 이로써 삼척 지역의 좌익 세력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척극장 습격사건을 계기로 삼척 지역에서 좌익 세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