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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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西樓關聯- |
영어공식명칭 | Jukseoru Related Painti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임호민 |
성격 | 회화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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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겸재 정선|강세황|권응신 등 |
소유자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국립춘천박물관|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삼척시립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 |
[정의]
조선시대 관동 8경의 하나인 죽서루와 관련하여 경관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
[개설]
조선시대 후기 삼척에 있는 죽서루와 주변의 풍광을 실경산수화로 그린 작품들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국립춘천박물관,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삼척시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관동십경』 가운데 죽서루 그림
1745년(영조 21)과 1746년(영조 22) 강원도 관찰사 김상성(金尙星)[1703~1755]과 삼척부사 오수채(吳遂采)[1692~1759]가 강릉부사 조적명(趙迪命)[1865~?] 등과 강원도 지역을 순력하고 제작하게 한 시화첩 『관동십경(關東十境)』 가운데 죽서루 그림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미상이다. 1746~1748년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단에 채색한 것으로, 크기는 37.5×25.2㎝이다. 『관동십경』 가운데 죽서루 그림은 실제 경치와 가깝게 그리려고 하기보다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과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 등을 조합하여 죽서루의 지리 및 경관의 특징을 표현하였다. 구도는 잔잔한 수면의 동해나 호수를 육지와 산이 둘러싼 모양새로 하여 목민관의 선정(善政)이 두루 미치는 온화한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모경흥기첩』 가운데 죽서루 그림
『모경흥기첩(暮景興寄帖)』은 겸재(謙齋)정선(鄭敾)[1676~1759]의 친구인 권섭(權燮)[1671~1759]의 손자 권신응(權信應)[1728~1787]이 17세 때 그린 44점의 진경산수화를 묶어 만든 화첩이다. 화첩 『영동열경(嶺東列景)』은 금강산 6장면, 관동 지역 12점으로 구성되었다. 그 가운데 1744년(영조 20)에 권신응이 수묵으로 그린 죽서루 그림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할아버지 권섭이 지은 시가 적혀 있다. 『모경흥기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은 개인 소장품이며, 크기는 26.5×17.5㎝이다.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은 정선이 65세 때 그린 관동 지역 명승과 관련된 진경산수화이다. 이 첩에는 정자연, 수태사 동굴, 총석정, 삼일호, 해산정, 천불암, 청간정, 시중대, 월송정, 망양정, 죽서루가 그려져 있다. 죽서루 그림은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바라 본 구도로 그려졌다. 죽서루 왼쪽은 응벽헌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포함한 객사, 오른쪽에는 연근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각각 그려져 있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죽서루 구조를 표현하였다.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죽서루도나 금강산도권의 죽서루도에 비하여 죽서루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본 시점에서 그려졌다. 이에 따라서 오십천이 휘돌아 나가는 모습이나 병풍처럼 긴 죽서루 절벽 주위는 그려지지 않았다. 『관동명승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은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1738년에 그려진 그림이며, 크기는 32.3×57.8㎝이다.
『금강산도화첩』 가운데 죽서루 그림
이병연(李秉淵)[1671~1751]의 화제시(畫題詩)가 함께 있는 『금강산도화첩(金剛山圖畵帖)』 가운데 죽서루 그림은 작가가 미상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크기는 28.0×36.7㎝이다. 정선의 『관동명승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과 구도가 흡사하다. 『금산산도화첩』 가운데 죽서루 그림은 죽서루 강 건너 서남쪽에서 동해를 보고 그렸지만 응벽헌 추정 건물의 모양이나 각도, 선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현, 절벽에서 오십천으로 나 있는 긴 사다리 표현 등 정선의 그림이나 그 모본을 참고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풍악장유첩』 가운데 죽서루 그림
『풍악장유첩(風嶽壯遊帖)』은 강세황의 글, 글씨, 그림을 모은 서화첩이다. 강세황이 76세 되던 해인 1788년(정조 12) 회양부사로 재직하던 아들 강인[1729~1781]을 방문하면서 경치를 둘러보고 그린 그림이다. 『풍악장유첩』에 있는 죽서루 그림은 현재 전하고 있는 그림 가운데 가장 멀리서 조망하며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풍경은 서쪽에서 동해로 휘돌아 나가는 오십천의 물길, 길게 이어지는 죽서루 절벽, 반대편의 뭍과 주변의 산까지 표현하였다. 『풍악장유첩』의 죽서루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크기는 32.1×47.9㎝이다.
『관동팔경첩』 가운데 죽서루 그림
『관동팔경첩(關東八景帖)』 가운데 죽서루 그림은 1872년에 그려졌다. 작가는 미상이며,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죽서루 절벽 위의 누각과 앞쪽의 물가 등 죽서루를 표현한 산수화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있지만 죽서루가 서 있는 절벽, 오십천, 동해 간 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져 있다. 담채로 연두, 초록, 밝은 적색, 하늘색 등이 다채롭게 사용됨으로써 민화화된 산수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죽서루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19세기에 엄치욱(嚴致郁)이 그린 죽서루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크기는 28.5×39.7㎝이다. 절벽 위의 죽서루를 당겨서 그린 것이 특징이다. 높은 위치에 당당한 건축물, 딸린 관아, 하단에는 민가 등이 표현되어 있다. 하단을 생략해서 마치 죽서루가 떠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방운(李昉運)[1761~?]의 죽서루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8~19세기께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의 크기는 61.7×35.2㎝이다. 세로로 긴 화면에 그려져서 기존의 죽서루 그림과는 구도상 차이를 보인다. 죽서루의 방향이나 동해 바다와의 관계가 현실로 보이지 않고, 화면 구성의 편의상 재조합되었다. 맑은 청색으로 산과 누정 지붕을 그렸다. 담묵과 담채로 청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작가 미상의 관동팔경병풍 가운데에도 죽서루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장소를 특징으로 반영한 그림이다. 죽서루는 세로로 긴 화면에 그려졌음에도 오십천 건너에서 바라본 죽서루 모습이 구도의 왜곡 없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금강산도권(金剛山圖卷)』에 있는 죽서루 그림은 19세기 작품으로, 작가는 미상이다. 크기는 30.5×43.8㎝이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두루마리에 포함된 죽서루 그림은 단원(檀園)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구도와 화면 구성을 모사한 것처럼 보인다.
『백운화첩(白雲畵帖)』 속 죽서루 그림은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크기는 32.5×43.0㎝이다. 성명 미상의 백운이 그린 이 그림은 울퉁불퉁한 기암절벽이 더 높고 더 거대하게 묘사된 데 반하여 죽서루는 외형을 강하게 표현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삼척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관동십경병풍』에도 죽서루 그림이 있다. 이 죽서루 그림은 문자도와 산수화를 합한 느낌을 준다.
20세기 초 작품으로 추정되는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것으로, 죽서루 장면은 죽서루가 마치 높은 절벽에서 곡예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특징]
각각의 그림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죽서루의 경관을 그리고 있어 매우 이채로우며, 채색에서도 수묵·담묵·담채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19세기 후반으로 이르면서 산수화 전형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 문자도를 가미하는 민화 성격의 산수화로 그려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관련된 회화계의 흐름과 경향을 파악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진경산수화이기에 조선시대 후기 죽서루를 비롯한 삼척도호부 관아의 위치 및 조성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