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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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敎育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Educatio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근대 |
집필자 | 김진광 |
[정의]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이루어진 전통 교육.
[개설]
조선시대 중앙에는 성균관과 4학이 있었고 지방에는 향교와 서당, 이름난 유학자나 학자 출신지에는 서원이 있어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향교]
향교는 중등 이상 교육 기관으로, 주로 양반 자제만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서민의 자제나 초학자에게는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향교에는 공부뿐만 아니라 유명한 선현(先賢)을 봉사(奉祀)하는 문묘,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 유학생 기숙사인 동양재·서양재가 있었다. 삼척 지역(당시는 삼척군으로, 지금의 삼척시·동해시·태백시 지역 포함)의 향교는 현재 삼척시 교동삼척초등학교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삼척향교의 시작은 1398년(태조 7) 고사음곡(古寺音谷)[또는 장사동으로, 지금의 고사리재 동쪽 기슭]에 처음 건립되었다. 이후 1407년(태종 7)에 옥서동[현 당저리]으로 이전하였고, 1468년(세조 14) 현재 위치인 교동으로 옮겼다. 1470년(성종 1)에는 생도를 40명에서 70명으로 30명 증원하였다. 원래 도호부에는 생도 수가 40명이었다. 숙종 때 부사 유송제(柳松齊)[1622~1685]가 중수한다는 이유로 삼척시 건지동에 이전하였다가 유림의 반발과 고발을 당하여 상부에 체포되고, 향교는 원래 장소로 다시 이전되었다. 1908년(순종 2) 처음으로 직원 제도가 실시되었으며, 1918년 군수 심의승(沈宜昇)이 삼척공립보통학교를 성내리의 죽장사에서 향교 명륜당 앞으로 이전하였다. 1925년부터 삼척향교에는 제사 일을 맡아 일하는 ‘장의’ 선거제가 실시되었다.[장의를 지내면 죽은 후 제사 지낼 때 ‘학생부군’이 아니고 ‘장의 아무개’라는 명칭 때문에 장의를 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1976년에 묘전비가 세워지고, 1977년 향교 건물이 지정의 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삼척향교는 창건 이래 다섯 차례 옮기고, 수차례 건물을 수리하였다. 1980년대 초 동해시가 삼척시에서 분리되면서 동해시묵호고등학교 인근에 동해 향교가 건립되었지만 동해시에 소속된 예전 토지는 아직 삼척향교 토지로 등록되어 있다.
[서당]
서당은 조선시대에서 구한말,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진 사립 보통교육 기관이었다. 양반과 서민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자제를 수용하였다. 수업 연수나 서당 설치 또는 폐지에 대한 일정한 기준도 없었으며, 훈장 자격 기준도 없었다. 학과목은 대체로 천자문, 계몽편무제시, 동몽선습, 명심보감, 공자를 비롯하여 경서의 강독(講讀)·제술(製述)·습자(習字) 등 3학과를 가르쳤다.
1930년대까지 삼척 지역에 있던 서당과 학원은 삼척읍의 경우 증산리의 증산서당[1936년 설립] 외 5개 서당, 성북리에 죽장학원이 있었다. 북평읍에는 지흥서당[효과리]과 삼봉서당[용전리] 등 이름난 서당과 이도학원 등이 있었다. 서당과 학원을 합쳐 8곳이었다. 근덕면에는 초곡서당[1939년 초곡리에 설립된 학원] 외 서당이 3개 있었고, 원덕면에는 갈남학원[1932년에 갈남리에 설립된 학원] 외 5개가 있었다. 노곡면에는 운주학원[1924년 주지리에 설립된 학원] 외 2개가 있었다. 도계읍에는 소달학원[1938년 신기리에 설립된 학원]과 동덕학원[황조리 소재]이 있었다. 미로면에는 활기학원[1938년 활기리에 설립된 학원]이 있었다.
[서원]
이름난 유학자나 학자 출신지에는 서원이 있었다. 서원은 그 자손이나 제자들이 설립하여 경영하던 곳으로, 사립학교에 해당된다. 서원은 산양서원[원덕읍 축전리 산양동에 1824년(순조 24) 창건], 정양재[근덕면 하맹방리 도촌에 명종 때 최련(崔漣)이라는 효자가 세우고 후생들을 가르쳤다.], 모현사[근덕면 상맹방리 심방골에 있었다.], 그 외 지금은 동해시로 편입된 용산서원[쇄운에 세워져서 숙종 때 학생들의 학문을 장려하던 부사 구천이세필(李世弼)과 그 외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을 모셔 놓고 다례를 지내고 있다. 서원 건물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경행서원[원래는 삼척 교리에 세워져서 성암김효원(金孝元), 나중에 문정공허목(許穆)을 함께 제사 지냈다. 순조 때 북평 송정리로 옮겼다.], 구호사[북평읍 구호리 서당재에 있었다] 등이 있었지만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