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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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eol |
이칭/별칭 | 원일,원단,원정,원신,원조,정조,세수,세초,연두,연수,연시,설날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안광선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음력 정월 초하루 풍속.
[개설]
한때 음력설[구정(舊正)]과 양력설[신정(新正)]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음력설은 전통 명절, 곧 설날을 의미한다. 양력설은 현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태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 명절은 역시 설이다. 구정이나 신정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은 추석과 함께 사흘 연휴이다. 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 어른들께 세배하고 성묘를 다녀온다.
[연원 및 변천]
설이 언제부터 우리 명절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는 신라인들이 원일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서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다. 설은 나이를 뜻하는 우리 고어 ‘살’에서 나왔다는 학설,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학설, 새로 솟아난다는 뜻과 마디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살(sal)’에서 기원한다는 학설 등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절차]
삼척 지역에서는 설을 하루 앞두고 해질 무렵 떡국제사를 지낸다. 시절식인 떡국을 조상들에게 먼저 대접하는 의미로 제사상에 모시는 조상 수 만큼 떡국을 차려놓고 절을 한다. 설날 아침에 연시제(年始祭)라 하여 조상에게 해가 바뀌었음을 고하는 차례를 지내고 나서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노소 간에 새해를 맞아 처음 인사하는 배례로, 이때 신년을 축하하는 여러 가지 인사말을 나누는데 이를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면 절값으로 세뱃돈을 준다. 가까운 집안 세배는 초하룻날 종가집부터 실시하고, 기타 동리 어른들과 상막이 있는 집은 초이틀부터 찾아다니면서 세배를 드렸다. 그러면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가 내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한다. 『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이라 하였다. 『열양세시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기록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오방색을 두른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색동저고리는 명절뿐만 아니라 돌과 같은 기념일에도 입는다. 돌에 남자 아이는 남색 띠를 두르고 여자 아이는 자색 띠를 둘러 구별하였다.
정초에 조리를 사서 성냥을 담아 두면 오는 복을 조리로 거두어들인다 하여 조리를 사는 풍습이 있다. 이때 팔고 사는 조리를 복조리라 한다. 정초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는 윷놀이이다. 삼척 지역에서는 종지윷이라 하여 술종지 속에 넣어 흔들어서 던지는 말윷[모윷]을 가지고 논다. 대보름까지는 윷놀이가 그치지 않으며, 동리마다 척사대회가 열려 며칠 동안 즐긴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거기에 윷판을 찍어 놓고 윷을 던지며 노는 윷놀이는 기술을 요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또 양반 집안의 나이가 많은 아녀자들은 생윷놀이, 상윷놀이로 하루를 보냈다.
부녀자들의 놀이로는 널뛰기가 있다. 인일(寅日)은 호랑이날이어서 널 머리로 호랑이 머리를 깬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판무도판(板舞跳板)이라 하였지만 이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사내아이 놀이로는 연날리기가 있다. 흔히 옛날 무사들이 싸울 때 쓰던 방패 모양의 네모로 만든 방패연과 긴꼬리를 한 물고기 모양의 가오리연으로 대별된다. 놀이에서는 멀리 날리기와 연싸움이 있다. 연은 순풍을 만나 하늘 높이 솟아오르게 되면 연싸움이 시작된다. 연줄을 서로 맞닿게 해서 어느 쪽이 끊어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상대방 연줄을 빨리 끊기 위해 유리를 보드럽게 빻아서 풀에 짓이겨 연줄에 메기어 놓으면 상대방 연줄을 끊는데 유리하다. 끊어진 상대방 연은 제멋대로 한없이 날아가게 되는데 이를 “연이 고향 간다.”고 한다. 마지막에 가지고 놀던 연을 날려 보내는 것은 한 해 액막이의 일환이다.
한때 설을 구정이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신정에 비하여 오래된 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양력설이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좀 더 체계를 갖추어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시간 체계에 맞는 양력설을 새롭고 진취 기상이 있다는 의미에서 신정으로 부르고 피식민지인인 한국인들이 쇠는 음력설은 오래되어 폐지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구정으로 불렀다. 음력설은 광복된 뒤에도 공무원이나 일부 국민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이 새해를 맞고 차례를 모시는 날이었음에도 정부는 1985년에야 비로소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1989년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음력설을 설날로 개칭하고 전후 하루씩을 포함하여 총 사흘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설은 구정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이제 일상에서는 구정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