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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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芙江南城谷山城 |
영어공식명칭 | Namseonggolsanseong in Bugang |
이칭/별칭 | 청원 남성골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백영종 |
조성|건립 시기/일시 | 고구려시대 - 부강 남성골산성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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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6월~2002년 7월 - 고구려 성책 및 주거지, 호, 가마 등이 조사됨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9월 26일 - 부강 남성골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13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부강 남성골산성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9호 재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강 남성골산성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부강 남성골산성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산26-12 일원 |
원소재지 | 청원 남성골산성 -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전체 둘레 270~360m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세종특별자치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남성골 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남성골 마을에 있는 북쪽의 야산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건립 경위]
부강 남성골산성의 정상부에서 금강에 면한 강안과 멀리 서쪽으로 공주 계룡산이 바라다보인다. 북쪽에서는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 상에 성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이 마주 보고 있다.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성산성, 노고봉산성, 애기바위산성이 바라다보인다. 서쪽으로는 부강리 벌판 중심부에 위치한 테뫼산성이 내려다보인다. 부강 남성골산성 주변으로는 10개의 산성이 분포하고 있어 단일 지역으로 최대의 산성 밀집 지역이다. 부강리는 삼국시대 이후로 산성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예로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 역할을 해 온 지역이다. 따라서 부강 남성골산성은 고대부터 중요한 전략 요충지에 지은 산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치]
부강 남성골산성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 산26-12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발굴조사를 통해 내·외곽을 이중으로 돌린 목책(木柵)과 내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차단하는 4개의 호(壕), 내곽 정상부 동문터의 석축 벽체를 특징으로 하는 5세기 후반 성책산성이다. 둘레는 270~360m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서는 다수의 저장구덩이와 주거지, 토기가마, 단야로 등의 유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정상부 북쪽과 서쪽으로 낮아진 사면대지에서는 목책 기둥열만 남은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다. 특히 동문터의 북쪽으로 석축 성벽을 축조한 흔적이 있어 산성의 목책 단계에서 석축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현황]
2002년 청원IC~부용 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포함된 일부 지역에 대해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부강 남성골산성은 그 실체가 당초 여겨지던 산 정상부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낮아진 사면대지와 동쪽의 능선대지를 포함한 내·외곽 구조를 갖추고 있는, 금강 유역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대규모 성책유적으로 밝혀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고구려시대의 목책구덩이 27기, 온돌유구 2기, 온돌주거지 2기, 원형수혈구덩이 51기, 수혈유구 25기, 목곽 저장고 1기, 구상유구 5기, 주혈군, 토광묘 2기가 확인되었다. 평저 장동호류·옹류·호류·동이류·뚜껑류·발·완·반 등의 조각과 경질토기 조각, 고배 조각, 개배 조각, 민무늬토기 조각, 방추차 등이 발견되었다.
유적으로 긴몸항아리[장동호(長胴壺)]를 비롯한 회흑색의 연질토기와 화살촉, 쇠도끼 등이 출토되었다. 한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과 환인, 중국 지안[집안(集安)] 지역의 유물과 거의 동일한 특징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유물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고구려 양식의 금귀걸이와 철제표비도 출토되었다.
또한 고구려 계통의 온돌과 부뚜막을 갖춘 집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고구려 토기를 굽던 가마터까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남성골산성은 단지 군사시설에 그치지 않고 주거 기능까지 겸한 고구려 남진정책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의 성책유적으로는 가장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접경 지역 및 고구려의 남진정책 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9호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