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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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東面鳴鶴里長水黃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있는 장수 황씨 집성촌.
[개설]
장수황씨가 세종특별자치시로 입향한 이후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과 조직, 유서(由緖)[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내력과 이유]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시제]
장수황씨 세종특별자치시 입향조 황첩(黃堞)의 시제(時祭)는 음력 10월 10일로, 묘소에서 지낸다. 묘소는 부강면 등곡리에 있다. 제사 음식은 종답(宗畓)[조상의 제사에 쓰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종중(宗中)에서 관리하고 소유하는 논]을 사용하는 사람이 땅을 사용하는 대신 제사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며 묘소도 관리하고 있다.
종답은 세종특별자치시 부용면 갈산2구에 있으며, 5마지기[1,000평] 정도이다. 전통시대까지만 해도 후손들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얼마 전부터 타성(他姓)[성이 다름 또는 다른 성]에게 맡기고 있다. 제사를 지내고 음복한 후 부강면 부강리에 있는 재실로 가서 회의를 진행한다. 재실은 묘소를 관리하는 종답 관리인이 사는 집으로, 소유는 장수황씨 집안이다.
황윤정의 아들 황발(黃發)의 시제는 황첩의 시제를 지낸 이튿날인 11일 부강면 부강리 용포 묘소에서 지낸다. 용포 묘소에는 황발과 황발의 아들 황정열(黃廷悅)이 모셔져 있다.
이곳 역시 장수황씨들의 밭이 많아서 밭을 농사짓는 댓가로 음식을 마련하여 제사를 올린다. 참석 인원은 60~70명 된다.
현재는 종중의 재산이 넉넉해서 제사에 참석하는 종원들에게는 차비로 2만 원씩을 주고 있으며, 종원들의 참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종회의 회칙과 자료]
장수황씨 연기종회는 친족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종중 재산을 관리 보존하고, 선조 제향 봉행 및 선조들의 기념사업 시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종회의 회칙은 1925년에 제정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종중에는 1925년 당시부터 현재까지 작성된 종회 결의록(決議錄)이 보관되어 있다. 내용은 회칙과 함께 임시총회 결의록 등 당시 회의 안건과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대략적인 순서는 일시와 장소를 적고 참석 인원, 개회 선언, 회장 인사, 감사보고와 결산보고, 회의 안건 등의 토의 내용이 적혀 있다.
임원은 고문 4명, 회장 1명, 총무 1명, 재무 1명, 감사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원 선출은 회장의 경우 정기총회에서 참석 인원의 과반수를 얻어 선출된다.
회의는 정기총회와 임시총회로 나누어 하고 있다. 정기총회는 입향조 황첩의 시제일로 한다. 임원 선출과 결산보고, 승인, 재산 취득과 처분에 관한 건 등이 주요 회의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세종 지역 저명 성씨인 장수황씨의 동족 조직과 활동을 보여 주는 묘제 및 종회의 실상을 전해 주는 사례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회의 내용을 적은 종회 결의록이 보존되어 있어 장수황씨의 종친회 운영과 재산 상황 등 100여 년간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