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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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舜龍 |
영어공식명칭 | Gang Sunyong |
이칭/별칭 | 화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활동 시기/일시 | 1354년(공민왕 4) - 강순룡 밀직사지사와 찬성사를 지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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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강순룡 묘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옛 충청남도 남면 고정리 산52-2]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신천 |
대표 관직 | 밀직사지사|찬성사 |
[정의]
고려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개설]
강순룡(康舜龍)은 고려시대 무신이자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오빠이다. 호는 화곡(化谷)이다.
[가계]
강순룡의 본관(本貫)은 신천(信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정승을 지낸 강숙재(康淑才), 할아버지는 상호군을 지낸 증상산부원군(贈象山府院君) 강서(康庶)이다. 아버지는 찬성사를 지낸 곡산군(谷山君) 강윤성(康允成)이다.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고정리 신천강씨(信川康氏)는 곡산파(谷山派)로 통훈대부 행 아산현감 겸 청주진관병마절제도위(通訓大夫行牙山縣監兼淸州鎭管兵馬節制使)를 지낸 강혁(康赫)이 입향한 것으로 전하여지는 가운데 강진경이 역모사건을 피하여 금남면 발산리로 이주하였다가 옛 남면 고정리 등지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활동 사항]
강순룡은 고려에서 문무과에 장원한 후 원나라에 들어가 숭문감소감(崇文監少監)이 되었고, 몽골식 이름인 바얀티무르[伯顔帖木兒]로 고쳐 활동하였다. 1354년(공민왕 3)에 돌아와 강중상(姜仲祥)과 함께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를 거쳐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그러나 1374년(공민왕 23) 오랑캐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김의(金義)가 명나라 사신 채빈(蔡斌) 등을 살해하고 북원(北元)의 장수 나하추(納哈出)에게 달아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김의를 원나라로 보냈다는 혐의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한편 강순룡의 누이동생이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로, 이성계의 정변과 조선 건국 과정에서 유력한 협력 세력으로 작용하면서 조선 개국 이후 재령백(載寧伯)의 작호(爵號)를 받았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일족이 참화(慘禍)[비참하고 끔찍한 재난이나 변고]를 당하였다.
[묘소]
강순룡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 대비실 마을 동쪽 능선의 서쪽 비탈길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본래 경기도 광주시 오금동에 있던 것을 1989년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묘와 함께 비(碑)가 남아 있다. 호패형 비석으로 높이 120㎝, 너비 44㎝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