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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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璣運 |
영어공식명칭 | Seong Giun |
이칭/별칭 | 덕천,순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희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성기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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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6년 - 성기운 사망 |
출생지 | 성기운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
부임|활동지 | 성기운 활동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
사당|배향지 | 병산사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352 |
성격 | 독립운동가|유학자|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정의]
일제강점기 활동하였던 유학자이자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의 병산사에 봉안된 인물.
[개설]
성기운(成璣運)[1877~1956]은 일제강점기 활동하였던 유학자로 한말의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의 문인으로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 1917년 5월 24일 호적령(戶籍令)에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다 네 차례에 걸쳐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였다. 1928년에는 공주 달전(達田)으로 이사하여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다 달전정사(達田精舍)에서 사망하였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사당 병산사(屛山祠)에 영정이 봉안(奉安)되어 있다.
[가계]
성기운의 본관(本貫)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순재(舜在), 호는 덕천(悳泉)이다. 아버지는 성두채(成斗彩)이고, 대제학 회곡(檜谷) 성석용(成石瑢)의 1세손이다. 동주(東洲) 성재원(成悌元)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성기운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안동(新安洞)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성기운은 12세에 회산 반동락(潘東雒)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으나, 부친의 권고로 학자가 많이 나온다는 기로 지방에 와서 공부하여 24세 되던 1900년 간재의 문인이 되었다. 성기운의 나이 32세에 경상북도 청도군 덕천으로 이사하였다. 34세 되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나라를 잃은 슬픔에 통곡하였다고 한다. 1912년 스승 간재를 따라 전라북도 부안 계화도(繼華島)로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41세 되던 1917년 5월 24일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호적령(戶籍令)이 내려졌으나 호적령을 반대하여 호적을 거부하다 1917년 5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였다. 구속과 석방의 과정에서 일본 경찰의 고문을 받았으나 단식으로 대응하며 일제의 호적에 등재되기를 거부하였다. 또한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거부하며 대한(大韓) 유민(遺民)을 자처함으로써 절의(節義)를 지키는 진정한 선비의 기개를 보여주었다.
성기운의 문인 손영석(孫永錫)이 남긴 『노옥일기(虜獄日記)』에 따르면 청도 경찰에서 부장과 여러 명의 순사들이 들이닥쳐 성기운을 연행하려 하자 크게 꾸짖으며 말하기를 “내가 대한 국민인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였다. 일본 경찰이 “무슨 이유로 호적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자 성기운이 다시 말하기를 “나는 한국 유민인데 왜 너희들 왜적의 호적을 하여야 하느냐, 더구나 나는 우리 한국 땅에 살고 있는데 너희들의 호적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하여 당시 일본 경찰도 감동하여 진의사(眞義士)로 평가하였다 전하여진다.
1924년 성기운은 청주 문의 의성동(義成洞)으로 이사하였고, 1928년에 다시 공주의 달전으로 이사하여 정착한 뒤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며 충현서원(忠賢書院) 원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1956년 8월 5일 달전정사(達田精舍)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기운은 일제 침략의 위기적 상황을 맞이하여서도 강상의리(綱常義理)를 세우고 존양대의(尊攘大義)를 주장함으로써 선비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인간은 학문이 아니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하며, 학문은 곧 인간이 인간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보았다. 학문이란 도(道)를 배우는 것이고, 도(道)는 일상 생활에 있어 지켜야 할 윤리라 하여 실천성을 중시하였다. 스승 간재가 현실 문제에 소극적이었음에도 의리(義理)를 실천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덕천선생기념사업회에서 1986년 『덕천선생문집(悳泉先生文集)』을 영인하여 간행하였으며, 『덕천선생문집』에는 『덕천집(悳泉集)』, 『덕천속집(悳泉續集)』, 『덕천선생연보(悳泉先生年譜)』, 『덕천습유(悳泉拾遺)』 등이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의 병산사에 성기운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병산사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