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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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元胄 |
영어공식명칭 | Jang Wonju |
이칭/별칭 | 봉옹,자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출생 시기/일시 | 1634년(인조 12) - 장원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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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00년(숙종 26) - 장원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80~1690년경 - 봉서재 건립 |
묘소|단소 | 장원주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 비룡산 |
사당|배향지 | 봉서재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서고길 81-2 [고복리 224]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결성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자 학자.
[개설]
장원주(張元胄)[1634~1700]의 자는 자장(子將), 호는 봉옹(鳳翁)이다. 결성장씨 연기파 연서면 고복리의 입향조이다.
고복리에는 창녕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였으나 장원주 이후 결성장씨가 세거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향촌(鄕村)[시골 마을]에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하며 학문을 연마하였고, 봉서재(鳳棲齋)라는 문중 서당을 지어 후학 교육에 힘썼다.
[가계]
장원주는 결성장씨 연기파 입향조인 장효충(張孝忠)[1470~1521]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받은 장진영(張振榮)이며, 어머니는 직장 성광국(成匡國)의 딸 창녕성씨이다.
장원주의 부인은 선략장군행훈련원봉사(宣略將軍行訓鍊院奉事)를 지낸 김성원(金聲遠)의 딸 언양김씨이다.
[활동 사항]
장원주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 은거(隱居)하며 학문을 쌓았다.
결성장씨가 연서면에 정착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전하여지지 않는다.
다만 후손의 전언에 의하면 연동면 송곡리에 살던 장원주가 어려서 외가인 창녕성씨들이 거주하는 연서면에 왔다가 어머니의 권고로 연서면 고복리의 서고[고산골]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원주는 만년[1680~1690년 경]에 오봉산 아래 고산동에 봉서재라는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봉서재는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결성장씨 문중 서당인 육영재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
[묘소]
장원주의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 비룡산 아래에 있으며, 묘갈명(墓碣銘)[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비석에 새긴 글]은 1935년 류인철(柳寅哲)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
장원주는 효행이 극진하여 아들 장후한(張後翰) 때 급복(級復)[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절부 등에게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여 주던 일]과 복호(復戶)[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
장원주의 증손 장규정(張奎貞)도 1794년(정조 18) 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가 되어 군자감정을 증직(贈職) 받았다.
봉서재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