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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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結城張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선빈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70년(성종 1) - 장효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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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21년(중종 16) - 장효충 사망 |
본관 | 결성장씨 본관 - 충청도 결성군 |
입향지 | 결성장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 |
세거|집성지 | 결성장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연동면|연서면 |
묘소|세장지 | 장효충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상노장 원직리 |
묘소|세장지 | 봉서재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 224 |
묘소|세장지 | 육영재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7-1 |
묘소|세장지 | 열녀 언양김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
묘소|세장지 | 열녀 한양조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
성씨 시조 | 장정필 |
입향 시조 | 장효충 |
[정의]
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하를 중시조로 하며 장효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결성장씨는 장효충이 16세기 초에 사화를 피해 처향인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전의면, 연동면, 연서면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연원]
결성장씨의 시조 태사공 장정필(張貞弼)은 태조 왕건을 도왔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시조 결성군(結城君) 장하(張夏)[1316~1399]는 장정필의 18세손으로, 결성장씨 득관조인 결성부원군 장사(張楒)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이다. 장하는 개경에서 출생하여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개경을 수복한 공(功)으로 1363년(공민왕 12) 전의주부(典儀注簿)로서 2등 공신에 올랐으며 고려 후기 다양한 관직을 거치면서 많은 업적과 일화를 남겼다. 장하는 1389년 문하시랑평장사로 결성군에 봉군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윤이·이초의 사건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고 유배를 당하였다가 얼마 뒤 풀려났다. 1391년 결성의 박철동에 집을 짓고 은거(隱居)[세상을 피해 숨어서 삶]하였으며 1399년(정종 1) 84세로 별세하였다.
결성장씨는 조선 전기의 기록에서 결성현의 토성(土姓)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입향 경위]
결성장씨는 장하의 7세손인 장효충(張孝忠)[1470~1521]이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에 처음 들어왔다. 임실군수를 지낸 장효충은 사화 때 화를 당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장효충의 처 전의이씨의 고향인 전의현 노곡[현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으로 낙향하였다. 장효충의 호는 노은(蘆隱)이다. 이후 전동면에서 3~4대를 살던 장효충의 후손들은 증손 대인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에 이웃 동면지역으로 분가한다. 장효충의 증손자인 장훈(張訓)[1568~1609]과 장훈의 동생 장설(張說), 장전(張詮), 사촌 장담(張談) 등이 송용리·노송리·예양리 등지로 이거(移居)하였다. 이거한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노곡의 산골 생활을 피해 넓은 들판으로 퍼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 후 결성장씨는 동면 지역의 3대 대성(大姓)의 하나로 지목될 만큼 번창하였다.
[현황]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결성장씨 족보에는 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고 있는 결성장씨들을 ‘전의파’가 아닌 ‘연기파’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후손들도 자신들을 결성장씨 연기파라고 일컫고 있다. 결성장씨 연기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종특별자치시 결성장씨들은 조선 후기에 입향 마을인 전의현 노곡보다 연기현 지역에서 더 번성하였기 때문이다. 결성장씨 연기파가 세보별로 모여 사는 마을을 정리해 보면 직장공파는 연동면 송용리, 참봉공파는 연동면 노송리와 연서면 고복리, 판윤공파는 연동면 노송리와 용호리, 익위공파는 연동면 예양리에 주로 거주하였다.
1935년에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조선의 성』에서는 송용리에 55가구, 노송리에 52가구를 결성장씨 동족 마을로 보고하고 있다.
[관련 유적]
전동면 상노장 원직리에는 장효충의 묘가 있다. 연서면 고복리에는 장효충의 8세손인 봉옹(鳳翁) 장원주(張元冑)[1634~1700]가 1600년대 후기에 창건하여 자제와 인근 마을 학동들을 교육하던 서당인 봉서재(鳳棲齋)가 있다. 봉서재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동면 송용리에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9호로 지정된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와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1호로 지정된 열녀 언양김씨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있다.
연동면 노송리에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된 열녀 한양조씨 정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