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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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訓 |
영어공식명칭 | Jang Hun |
이칭/별칭 | 노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정의]
조선시대 세종 지역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자 학자.
[개설]
장훈(張訓)[1568~1609]의 호는 노초(老樵)이며, 통훈대부헌릉직장(通訓大夫獻陵直長)을 지냈다.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다.
장훈이 어떠한 이유로 송용리 일대로 이거(移居)[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하였는지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장훈이 이거한 후 결성장씨(結城張氏)는 연동면 일대 3대 성씨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는 데 밑바탕을 만든 인물이다.
[가계]
장훈은 송용리 지역의 결성장씨 입향조로, 장효충(張孝忠)[1470~1521]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조봉대부 사옹서주부(司饔署主簿)를 지낸 장한준(張漢俊)이고, 어머니는 현감을 지낸 신경손(申敬孫)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부인은 풍천임씨(豊川任氏)이다.
본래 결성장씨는 결성군(結城君) 장하(張夏)의 7세손 장효충이 사화를 피하여 처 전의이씨(全義李氏)의 고향인 전의 상노정으로 낙향한 것을 계기로 연기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전동면 일대에서 3~4대를 살다 장효충의 후손인 증손 장훈 등이 이웃 지역인 동면으로 분가(分家)[가족의 한 구성원이 주로 결혼 등으로 살림을 차려 따로 나감]하면서 지금의 일족(一族)[같은 조상의 친척]을 이루게 되었다.
[활동 사항]
장훈은 동생 장설(張說)·장전(張詮), 사촌 장담(張談) 등과 함께 송용리·노송리·예양리 등지로 이거하여 지금의 결성장씨 분파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문중 서당인 육영재(毓英齋)를 건립하였는데, 연동면 송용리 일대에 정착한 이후 서숙(書塾)[예전에 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을 세워 자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