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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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璉 |
영어공식명칭 | Gim 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호 |
출생 시기/일시 | 1712년(숙종 38) - 김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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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85년(정조 9) - 김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6년 - 효자 김연 정려 건립 |
거주|이주지 | 김연 거주지 - 충청도 연기현 나발터 |
사당|배향지 | 효자 김연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317[나발터]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강릉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김연(金璉)[1712~1790]은 연기현 청라리 나발터[羅發垈]에 살면서 촌속(村俗)[시골의 풍속]에 익숙하고 예의(禮義)가 뚜렷하여 평판이 좋았다.
홀로 계신 아버지의 중병에 모든 약이 효과가 없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아버지께 드려 목숨을 구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근처 양달 쪽의 양대(良垈)는 나주나씨(羅州羅氏)의 세거지로, 효자 김연 정려 뒤편으로 은행나무가 크게 서 있는 마을이다.
근동에 모두 효자가 많아 행정(杏亭) 효자촌이라고도 부르고 좋은 밭과 기름진 옥답(玉沓)이 많아 양지바르고 살기가 좋은 곳이어서 ‘양대(良垈)’라고도 부르는데 효행이 그치지 않은 곳이다.
앞 동네 헌대 마을 역시 역사적으로 유명한 효자(孝子)인 홍우구(洪禹九)가 살아 이웃 사람들이 헌대에 배울 만한 분이 거주(居住)하는 곳이라 하여 ‘헌대(獻垈)’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첩된 효자마을에서도 김연의 지극한 효행이 감영에 전해지고, 1807년 김연의 후손은 급복(給復)[조선 시대에 충신·효자·절부 등에게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여 주던 일]을 받았다.
[상훈과 추모]
효자 김연의 효행과 행적을 기리는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317[나발터]에 세워졌으며,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었다.
효자 김연 정려는 1966년 성균관의 재정 지원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건립되었다. 경사지 계단 오른쪽에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효자 김연 정려 내부에는 현판과 정려기가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