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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62
한자 閔後騫
영어공식명칭 Min Hugeon
이칭/별칭 월하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1년(선조 4)연표보기 - 민후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06년(선조 39) - 민후건 진사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43년(인조 21) - 민후건 공조정랑에 오름
몰년 시기/일시 1652년(효종 3)연표보기 - 민후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08년(숙종 34) - 민후건 정려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효자 민후건 정려 개보수
출생지 민후건 출생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민후건 묘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효자 민후건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887 지도보기
성격 효자|문신
성별
본관 여흥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민후건(閔後騫)[1571~1652]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호는 월하(月河)이다.

[활동 사항]

민후건은 사마시에 입격한 이후 공조정랑으로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원종공신이 되었고, 낙향 후 병자호란 때 연기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등 적극적인 향촌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던 민후건은 26세 때 모친이 병석에 눕게 되자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찾아다녔으나 별다른 약을 구하지 못하였다. 모친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가던 어느 해 겨울 모친이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엄동설한(嚴冬雪寒)임에도 얼음을 깨고 잉어를 구하여 복용시키니 병세가 점점 좋아져 치유(治癒)하게 되었다.

[묘소]

민후건의 묘소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있다. 월하리는 민후건의 호가 ‘월하(月河)’인 것과 관련이 있다. 월하리는 정치에 거리를 두고 한양을 떠나 ‘초야에서 풍류를 벗 삼아 사는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으로 ‘월동(月洞)’이라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하였다.

[상훈과 추모]

민후건의 효행이 충청감영에 알려져 1708년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현판에는 민후건이 공조정랑을 지냈고 공조참판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되었다는 내용과 명정 받음을 기록하고 있다.

원래 월하리 입구의 가래터에 민후건의 집안에서 정려를 건립하였으나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1983년 개·보수한 효자 민후건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각진 석기둥에 맞배지붕 건물로 육중하다. 효자 민후건 정려는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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