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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187
한자 月河里
영어공식명칭 Wolhari
이칭/별칭 월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정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월하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월하리에서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월하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월하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1㎢
가구수 531가구
인구 1,021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연기군의 지명유래』에 의하면 월하리민후건의 호 월하(月河)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勢道家) 민후건이 정치를 접고 풍류를 즐기면서 보냈는데 세월 좋은 마을이란 뜻에서 월동(月洞)이라 불렀다. 월하리에는 가래터, 구서원, 전동, 월동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가래터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논밭을 갈던 가래와 닮아 붙은 명칭이다. 또한 매로부터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가리와 닮아 가리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구서원마을은 예전에 서원이 있던 마을로, 옆에 시내가 흘러서 월계(月溪)라고도 한다.

전동마을은 인조가 마을 사람들의 예전(禮典)이 바르다고 붙여 준 명칭이다. 월동마을은 세월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북이면(北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연기군 북이면 월계리·전동리·부곡리·신향리와 북일면의 번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기군 북면 월하리(月河里)에 속하였고, 1917년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월하리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월하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월하리는 구릉성 산지와 평지가 넓게 분포한다. 마을 남쪽에는 북서에서 흐르는 월하천이 남동을 지나 하류에서 미호천으로 유입한다. 지대가 약간 높은 북서 지역은 대부분 밭과 과수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에 남동 지역의 월하천미호천이 합류하는 사이에는 넓은 월하들이 펼쳐져 있고, 두 하천에 임한 월하들 외곽에는 침수피해를 위해 제방을 쌓았다.

[현황]

연서면 중부 동쪽에 있는 월하리의 면적은 5.1㎢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531가구에 총 1,021명이다.

연서면 북서쪽은 밭농사와 과수 재배 중심지이며, 남동쪽의 넓은 월하들에서는 쌀이 많이 생산된다.

농업과 관련하여 농업인가공지원센터와 귀농귀촌협의회 영농조합법인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소풍농원과 복숭아 품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월하농원 등이 있다.

교통은 일반국도가 마을을 남북으로 통과하여 북의 조치원읍, 남의 정부세종청사와의 접근성이 높다.

월하리여흥민씨, 한양조씨, 순천박씨 등이 모여 살았다. 월동마을 북쪽에는 충효 행적을 기리기 위한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호 효자 민후건 정려가 있으며, 백제 시대에 창건된 연화사에는 보물 제649호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와 보물 제650호 세종시 연화사 칠존불비상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7 현행화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531가구에 총 1,02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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