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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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爾復 |
영어공식명칭 | Seong IBok |
이칭/별칭 | 양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철원 |
출생 시기/일시 | 1713년(숙종 39) - 성이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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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76년(영조 52) - 성이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91년(고종 28) - 성이복 정려를 명 받음 |
추모 시기/일시 | 1892년(고종 29) - 성이복 문중에서 정려 건립 |
묘소|단소 | 효자 성이복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 산93-1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아버지는 성석장(成碩章)이고, 어머니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태한의 딸이다.
큰아버지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성규장(成奎章)에게 양자로 출계(出系)[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활동 사항]
성이복은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부 성규장이 병들자 ‘하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하고 집 안에 단을 쌓고 기도를 하면서 쾌유를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단 위에서 천지가 떠나갈 듯 울부짖었다. 그러나 성이복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도에 열중하였다. 이에 호랑이도 감동하여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지극한 정성에도 양부상을 당하자 애도하면서 3년을 시묘하였다.
[상훈과 추모]
1891년(고종 28)에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 받아 이듬해인 1892년에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효자 성이복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