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79
한자 金瓛妻南陽洪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736년(영조 12)연표보기 - 김환 처 남양홍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3년(영조 14) - 김환 처 남양홍씨 정려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4년(고종 31) - 김환 처 남양홍씨 정려 중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김환 처 남양홍씨 정려 보수
사당|배향지 김환 처 남양홍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284-1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남양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남양홍씨(南陽洪氏)[?~1736]는 안동 사람 김환(金瓛)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 여기고 자결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병은 차도가 있어 회복하였는데 주변에서 남양홍씨의 정성에 신령이 감동한 것이라며 칭송한 열녀이다.

[가계]

김환남양홍씨의 아버지는 홍처한(洪處漢)이다.

[활동 사항]

남양홍씨는 홍처한의 딸로, 가훈을 익히고 부덕을 쌓았다. 그러다가 부모님을 잃고 남매가 의지하며 살다가 이웃 동네의 김환에게 출가하여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남편이 이름 모를 병으로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남편과 동침하면 해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으나 이미 임신 4~5개월에 들어선 후였다. 어느 날 점쟁이가 말하기를 오늘 12시에 남편이 죽는다고 하자 목욕재계하고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으나 오히려 병은 악화되었다. 이에 남양홍씨가 놀라서 말하기를 “이 집의 가장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내가 어찌 생명을 보존하랴.”하고 울면서 어린 자식을 불러 젖을 먹이고 광 속에 들어가 음독 자결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남양홍씨가 죽은 후에 남편 김환은 병에 차도가 있어 회복하게 되었는데 주변에서 부인의 지성이 신령을 감동시킨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상훈과 추모]

1738년(영조 14)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아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건립하였으며, 1894년(고종 31)에 중수하고 1992년에 보수하였다. 열녀 남양홍씨 정려는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3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해지되고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0호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