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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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爾初妻杞溪兪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철원 |
몰년 시기/일시 | 1719년(숙종 45) - 신이초 처 기계유씨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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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729년(영조 5) - 신이초 처 기계유씨 정려 건립 |
사당|배향지 | 신이초 처 기계유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 산25-6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기계 |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기계유씨(杞溪兪氏)는 신이초(愼爾初)의 부인으로, 남편은 무안박씨이다. 신이초에게 출가하여 다복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이 갑자기 숨지자 장례를 치른 후 식음을 전폐한 지 7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이다.
[가계]
신이초 처 기계유씨는 시남(市南) 유계(兪棨)[1607~1664]의 종손녀(從孫女)이다.
[활동 사항]
기계유씨[?~1719]는 신이초에게 출가하여 슬하에 10남매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시부모에게는 효성을 다하고 일가친척과는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여 주변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이 갑자기 숨을 거두자 정성으로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자식들을 불러 모아 이르기를 “내가 평소 너희 아버지를 정성껏 받들지 못하여 돌아가셨구나. 이제 나 홀로 남아 복을 누리는 것은 부덕을 기르는 것이 아니니 너희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아내의 본분을 다하고자 한다. 너희는 내가 죽은 후에도 형제간에 더욱 아끼고 화목하게 살아라.”하고 유언을 남겼다. 이에 자식들이 통곡하며 말렸으나 식음을 전폐한 지 7일 만에 숨졌다. 전의현 유림들이 기계유씨의 열행을 전의현감과 충청감영에 알려 1729년(영조 5)에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 받아 건립하였다. 『연기지』와 『연기인물지』 등에는 암행어사의 상계(上啓)[조정이나 윗사람에게 사정이나 의견을 아룀]에 의하여 정려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729년(영조 5) 정려를 명 받아 건립하였다. 열녀 기계유씨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에 있으며,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3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해지되고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3호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