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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복 처 창녕성씨·전오륜 처 결성장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82
한자 全五福妻昌寧成氏·全五倫妻結城張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735년(영조 11)연표보기 - 전오복 처 창녕성씨 사망
몰년 시기/일시 1753년(영조 29)연표보기 - 전오륜 처 결성장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72년(영조 48) - 전오복 처 창녕성씨·전오륜 처 결성장씨 정려를 내림
사당|배향지 열녀 창녕성씨·결성장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창녕|결성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동서지간 열녀.

[개설]

창녕성씨(昌寧成氏)와 결성장씨(結城張氏)옥천전씨 집안으로 출가한 동서지간으로, 남편과의 의와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자결한 이열부이다.

[활동 사항]

창녕성씨[?~1735]는 전오복(全五福)과 혼인하였다. 남편 전오복이 1735년(영조 11)에 죽자 뒤를 따라 자결(自決)[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하였다. 결성장씨[?~1753]는 전오복의 동생 전오륜(全五倫)에게 출가하였다. 따라서 창녕성씨와는 동서지간이었으며, 한집에서 함께 살았다. 결성장씨는 시숙(媤叔)[남편과 항렬이 같은 사람 가운데 남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 전오복과 손위 동서 창녕성씨가 별세한 지 18년이 지난 1753년(영조 29) 남편 전오륜이 병환이 들어 지성으로 간호하였으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그러자 남편이 죽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유서를 시부모에게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남편 전오륜은 결성장씨가 자결한 지 한 달 후에 숨을 거두었다.

[상훈과 추모]

1772년(영조 48)에 영조가 정려를 내렸다. 1772년 이조판서 조명정(趙明鼎)이 짓고 연기현감 황운조(黃運祚)가 쓴 제성장양절부정려후(題成張兩節婦旌閭後)와 1793년(정조 17) 송환기가 지은 이열부정려문(二烈婦旌閭文)이 정려에 걸려 있다. 열녀 창녕성씨 결성장씨 정려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 있다가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도담동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열녀 창녕성씨 결성장씨 정려는 2001년 5월 31일 연기군 향토유적 제28호로 지정되었지만 2014년 9월 30일 해제되고 동시에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8호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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