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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87
한자 權葑
영어공식명칭 Gwon B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장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안동
대표 관직 주부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개설]

권봉(權葑)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안동권씨 추밀공파 후손으로 주부(主簿)[조선시대 각 아문의 문서와 부적을 주관하던 종6품 벼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충절(忠節)이나 정절(貞節)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가계]

권봉안동권씨 추밀공파(樞密公派) 후손이다. 파조는 시조의 10세손인 충순공 권수평(權守平)이다. 벼슬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기 때문에 권수평의 후손들을 추밀공파라 일컫는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에 입향한 인물은 파조[권수평]의 10세손인 권은이다. 권은은 계유정난과 관련이 있는 영의정을 지낸 황보인의 사위이다.

또한 계유정난을 주도한 권남이 권은의 당숙(堂叔)이어서 계유정난 이후 10여 년간 양주에 부처(付處)[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는 형벌]되었다가 1463년에 풀려난 뒤 후손들이 전의 지역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전의에 정착한 이후 권봉의 아버지인 권주는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 출사(出仕)[벼슬을 하여 관청에 출근함]하여 품계는 절충장군에 이르고 관직은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권주는 임진왜란 당시 쌀 800석을 향소(享所)[제사를 지내는 곳]에 헌납하였다.

권주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권영의 후손들은 주로 상노장에 살았고, 넷째인 권기의 후손은 전동면 청송리에 자리 잡았다.

막내인 권봉임진왜란 때 순절하였고, 권봉의 아들 권전(權佺)도 함께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활동 사항]

권봉은 주부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 정동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 정중리]에서 분전(奮戰)[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하다가 순절하였다.

정중리는 전동면에서 조치원으로 나가는 길목으로, 권봉은 병마산 아래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고 한다. 피 묻은 적삼을 말 등에 올리자 말이 스스로 상노장 종갓집으로 달려가 한참을 울던 끝에 죽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시신 대신 적삼을 묻고 말무덤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의 배일(排日)이라는 마을 이름은 권봉권봉의 아들 권전이 순절한 후 사람들이 일본을 배척한다며 지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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