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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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義城金氏旌閭 |
이칭/별칭 | 열녀 이성호 처 의성김씨 정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오룡동길 30[부동리 213-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부동리에 있었던 이성호의 처 의성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개설]
열녀 의성김씨 정려는 이성호(李聖浩) 처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성호는 예전에 있었던 정려 현판에는 이문근(李文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후손의 전언으로는 이문백(李文柏)이 맞다고 한다.
정려기에 의하면 의성김씨는 14세 때 이성호에게 출가하여 시어머니의 풍환으로 40여 년간 대소변을 받아 냈다. 행상차 함경도로 떠난 남편을 수년 동안 기다리던 중 남편이 객사(客死)[객지에서 죽음]하였다는 비보(悲報)[슬픈 기별이나 소식]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상심할까 염려하여 내색 없이 시어머니를 이웃에 의탁하고 2,000여 리나 떨어진 함경도를 찾아가 남편을 화장해서 유골을 머리에 이고 밤낮없이 걸어 55일 만에 돌아왔다.
의성김씨는 남편의 유골을 선영(先塋)[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 무덤 근처의 땅] 아래에 안장시키고 호곡(號哭)[소리 내어 슬피 울거나 그러한 울음] 3년의 예를 치렀다.
이후 빈곤한 살림에도 아들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길러야겠다는 각오로 배고픔과 피곤함을 잊은 채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부동리 오룡동마을의 길가에 있었으나 최근 후손들에 의하여 철거된 것으로 알려진다.
[변천]
1950년에 성균관장의 열녀 표창을 받았으며, 효열현판을 증정받아 1980년에 아들 이집성(李集成)의 사재(私財)[개인 재산]로 정려를 건립하였다.
[현황]
열녀 의성김씨 정려는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