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180 |
---|---|
한자 | 下鳳里別神堂旗告祀 |
영어공식명칭 | Sacrificial Rite for the Farming Flag of Habongri Byeolsin Shrin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의례 장소 | 하봉리 별신당 기고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파평윤씨 재실 부근의 공터 |
---|---|
성격 | 고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 |
신당/신체 | 농기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별신당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에 풍년을 비는 뜻에서 농기에 지내는 고사.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별신당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에 기고사를 지낸다. 농기(農旗)는 부잣집 바깥마당에 동쪽을 향하여 세워 놓았다. 1960년대 초엽까지 윤명삼 집 바깥마당이 기고사 터였다. 윤명삼은 일대에 땅이 많은 큰 부자였다. 윤명삼이 숨진 후로 고사를 지내는 장소가 마을 공터로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파평윤씨 재실 부근의 공터에서 정성을 드린다.
[연원 및 변천]
하봉리는 예로부터 열두갬실이라 하여 참시렁굴, 황골, 하산, 동편말, 할미터골, 요골, 새뜸, 구석당, 제조골[제지골], 별신당, 윗갬실 등 여러 자연마을로 나뉘었다. 2000년대 초엽까지 열두갬실 가운데 5개 자연마을[황골, 하산, 별신당, 동편말, 할미터골]에서 기고사를 각자 지냈다.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이면 각 마을에서는 농기를 세워 놓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과태평을 빌었다. 5개 마을 중 동편말과 할미터골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기고사가 폐지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별신당 마을의 농기는 1998년에 새로 장만한 것이다. 직사각형의 천 가운데에는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묵서되어 있다. 기폭의 왼쪽에는 ‘단기사삼삼일년일월십오일(檀紀四三三一年 一月 十五日)’이라고 적혀 있다. 1998년(단기 4331) 정월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깃대 위에는 꿩장목을 장식하였다.
[절차]
마을에서는 깨끗한 사람으로 유사를 뽑는다. 과거에는 30여 호가 돌아가면서 유사를 맡다가 1990년대 초엽부터는 윤두한이 유사를 도맡고 있다. 기고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윤두한이 홀로 전통을 잇고 있다. 유사는 정월 보름이 다가오면 집안에서 근신한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정성 드릴 준비를 한다.
정월 대보름날 동이 트면 유사는 제물을 들고 공터로 나간다. 기고사에는 남자들만 참여할 수 있다. 동쪽으로 상을 펴 놓고 제물로 떡 한 시루[고물떡 5되 분량], 명태, 대추, 밤, 곶감 등을 진설한다. 준비가 끝나면 유사가 앞으로 나아가 잔을 올리고 사배(四拜)한다. 사배 후 농기를 바라보고 “동민 모두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농사 대풍하게 하여 주시고, 주민들 마음먹은 대로 소원성취하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축원한다.
기고사에서 노총각들이 절을 하면 반드시 배필을 만날 수 있고 아들을 원하는 이가 정성을 드려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고사에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잔을 올리고 절한다. 기는 바로 내리지 않고 정월 그믐까지 그대로 세워 둔다. 마지막에 유사는 기폭에 명태 대가리와 떡 한 덩어리를 싸서 꼭 묶어 둔다.
[현황]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농기를 세우고 고사를 지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윤두한이 유사를 도맡고 있다. 주민들의 참여율은 저조하지만 윤두한에 의하여 기고사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