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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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대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7년 10월 - 금남면 장재리 사영복[남, 73세] 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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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8년 12월 31일 - 『연기군지』 803~804면 수록 |
관련 지명 | 괴화산 -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
성격 | 명당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지관|김 선비|마을 사람|산신령 |
모티프 유형 | 고진감래|명당설화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의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끝퍼진 날가지」는 착한 일을 많이 하던 김 선비가 죽은 후에 산신령 등의 도움으로 명당을 얻어 자손이 번성하였다는 명당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1987년 금남면 장재리의 사영복[남, 73세]이 전수한 것을 사재동이 기록하였다.
[내용]
옛날 장재리에 김 선비가 살았다. 김 선비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글방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약방을 열어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다. 또한 풍수리지에 능하여 남들의 묏자리를 봐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다 할 보답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김 선비가 나이 들고 병들어 죽자 동네 사람들은 발 벗고 협력하여 장사를 치르게 됐다. 그러나 그럴듯한 자리가 없어 괴화산 기슭 남향바지 한 봉우리 중턱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묏자리를 파도 돌이 나왔다. 그때 나이 든 한 사람이 “내가 이 삽을 저 아래로 던져 꽂히는 곳을 찾아 다시 묏자리를 파자.”고 하였다. 그리고 힘껏 던진 삽이 꽂힌 자리에 김 선비의 장사를 지냈다. 그 후 김 선비의 아들은 자손을 두고 재산도 늘게 되었다. 아무래도 조상의 음덕이라 생각한 아들이 지관을 데려가 살피니, 그 자리가 끝 퍼진 날가지 명당이라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먼저 자리에 돌이 나온 것도, 삽을 던진 명당자리도 모두 김 선비가 공덕을 닦았기 때문에 산신령이 도운 거라 전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끝퍼진 날가지」의 주요 모티프는 ‘청렴하게 산 김 선비’와 ‘산신령이 점지해준 명당 묏자리’ 등이다. 「끝퍼진 날가지」는 남들을 위해 살아온 착한 김 선비가 죽은 후에 산신령이 점지해준 명당 자리에 안치되고, 김 선비의 자손들은 번성하게 된다는 고진감래 설화의 유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