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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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Myeoneuri Bawi(2)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산9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오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남면향토지』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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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전월산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산92 |
성격 | 암석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선비|아들|시어머니[선비의 아내]|며느리|금부도사 |
모티프 유형 | 충절|절개|암석유래담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전월산에서며느리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며느리바위(2)」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전월산에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형상을 한 바위에 얽힌 암석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4년 조치원문화원에서 발행한 『남면향토지』에 실려 있다.
[내용]
옛날에 청렴하고 올곧은 선비가 살았는데 벼슬길에 올랐다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억울한 죽음에 이르렀다. 선비의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남면 양화리 골말에 내려와 길쌈을 하고 명주를 팔며 살아 가게 되었다. 아들이 장성하여 벼슬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역적의 자식이어서 과거에 급제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부친의 누명이 벗겨지자 아들은 조정의 부름을 받아 왕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모친은 아들이 한양으로 가 정쟁(廷爭)[임금의 앞에서 간(諫)하여 다툼]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고려 때 명신의 후예와 혼인시킨다. 하지만 아들은 편지 한 장을 써 두고 한양으로 떠나고 며느리만 남게 된다. 며느리는 자신을 걱정하는 친정과 인연을 끊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길쌈 등 잡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금부도사가 행차하여 아들이 임금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여 나라를 망쳤다고 하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사약을 내린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기꺼이 사약을 받아 마시고 죽음에 이른다. 이후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전월산 기슭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추켜세우는 형상의 바위가 솟아 올라왔고, 사람들은 솟아난 바위를 일컬어 며느리바위로 불렀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며느리바위(2)」는 왕에게 직언을 하던 선비 부자의 죽음과 이를 따라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절개를 모티프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