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14 |
---|---|
한자 | 水成里 |
영어공식명칭 | Sus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수성리(水成里)의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는 없다. 수성1리의 자연 마을로 노루미기[장항(獐項)], 가람[갈암(葛岩)·운라(雲羅)·운산(雲山)]이 있고, 수성2리의 자연 마을로 갓말[지촌(枝村)], 수국(水局), 새뜸[신창(新昌)]이 있다. 노루미기는 마을 북쪽 산이 노루가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람은 조선 선조(宣祖) 때 송 씨가 거주한 뒤 마을로 발전하였다. 당시 마을 중앙 큰 바위 주위로 칡넝쿨이 무성하여 가람[갈암]이라고 하였다. 또 마을 앞 개울물이 비단같이 흘러내린다고 하여 운라라고도 불렀다.
갓말은 조선 선조 때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안착하면서 발전하였다. 정구는 이곳에서 학문과 덕을 닦으며 장여헌, 허수미와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본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와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촌으로 불렀다. 1990년대 후반까지 청주 정씨(淸州鄭氏) 집성촌이었다. 수국은 조선 선조 때 만들어진 마을이며, 앞산 모양이 배와 같다고 하여 처음에는 수국(水國)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조정에서 ‘나라 국(國)’ 자를 지명에 쓰지 못하게 하자 수국(水局)으로 고쳐 불렀다. 새뜸은 1936년[병자년] 대홍수 때 수국 마을에 큰 피해가 발생한 후 주민의 일부가 이주하여 만들어진 마을로 신창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대리방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수성동으로 하고 대리면과 청파면을 합친 청파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청파면과 지사면을 수륜면으로 합면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수륜면 수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과 서쪽의 산지 사이로 흐르는 대가천(大伽川)이 평탄한 지형을 형성하여, 여기에 농토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의 서쪽으로 연감산(硯坎山)이 솟아 있다. 갓말 뒤 북쪽산인 창평산(蒼坪山)이 수륜면의 송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 갓말천이 흐른다. 갓말 앞 남쪽 들로 대가천과 갓말천의 삼각주 지점에 갓말들이 있다. 갓말 뒤 북쪽으로 갓말천 변에 있는 들은 개정지들이라고 부르며, 수국 앞 서쪽 들은 수성들로 불린다.
[현황]
수성리는 수륜면의 북서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수륜면의 송계리와 신정리, 서부와 북부는 성주군의 가천면, 대가면과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78㎢이며, 수성1리와 수성2리 2개 행정리에 132가구, 213명[남 105명, 여 1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수성리의 인구는 1974년 859명에서 1994년 369명, 2001년 314명, 2018년 200명으로 감소하다가 2021년 213명으로 증가하였다. 가구 수는 1974년 141가구에서 1994년 118가구로 감소하였고. 2018년 114가구로 소폭 감소하였다가 2021년 132가구로 다시 늘어났다.
국도 제33호선이 대가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지나가며 마을과 외부를 이어 준다. 문화 유적으로 정구가 1603년(선조 36) 건립한 재사인 숙야재(夙夜齋)가 있다. 「무흘구곡(武屹九曲)」 중 제2곡에서 노래한 한강대(寒岡臺)가 수성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