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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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山里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광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성주와 관련한 지지에 조선 전기가 넘어가면서 이곳에 ‘광대원(廣大院)’이라는 역원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광산(廣山)’은 여기에서 따온 지명으로 추정된다. 광산1리의 자연 마을로 원터[주막뜸·죽전(竹田)·광대원], 평촌(坪村·平村), 골마[남계(藍溪)]가 있고, 광산2리의 자연 마을로 덕말리[덕촌(德村)], 광산3리의 자연 마을로 오당(吾堂·梧堂)과 중평(中坪), 동산(東山)[외티]이 있다.
원터는 옛날 역원(驛院) 제도가 있을 때 이곳에 ‘광대원’이 설치되어 마을 이름을 ‘원터’ 또는 ‘광대원’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또 마을 뒷산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죽전이라고도 하였다. 평촌은 마을이 자리한 곳이 산촌(山村) 중에서는 평평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골마[남계]는 마을 옆에 푸른 시냇물이 흘러서 ‘푸를 남(藍)’ 자에 ‘시내 계(溪)’ 자를 써서 남계라고 이름하였다. 덕촌은 해마다 풍년이 들고 번창해서 ‘덕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후에 덕말리로 부르게 되었다.
오당은 조선 후기 황윤중(黃允中)이 이 마을에 정착한 후 ‘오당’이라는 서당을 열어서 마을 이름도 오당으로 불렀다는 설과, 서당이 오동나무 아래에 있어 서당 이름을 ‘오당(梧堂)’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중평은 오당과 덕말리 사이에 있는데 두 마을 사이 평평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 중평이라고 이름하였다. 동산은 광대원의 동쪽 산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며, 고개 아래에 외따로 있다 하여 ‘외티’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광산동으로 하고 금수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금수면 광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광산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분지 내부에 대가천의 지류들이 얽혀서 흐르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평탄한 지형 위에 농지와 마을들이 자리한다.
[현황]
광산리는 금수면 남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금수면의 후평리와 어은리, 명천리, 남부와 서부는 성주군의 대가면 도남리, 가천면 중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98㎢이며, 광산1리와 광산2리, 광산3리 3개 행정리에 165가구, 252명[남 132명, 여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광산리 인구는 1974년 737명에서 2010년 233명으로 감소하였다가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구 수는 1974년 153가구에서 1994년 120가구로 감소한 후 증가하여 2018년 160가구, 2021년 165가구가 되었다.
광산리 내부를 관통하는 대가천 지류의 가장자리에 언내, 죽전, 평촌, 오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평촌에 조선 후기 유학자 월담(月潭) 여효사(吕孝思)[1612~1661]가 강학과 잠심(潛心)을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인 월담정사(月潭精舍)와 재실인 삼이당(三怡堂)이 있다. 평촌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서 있는 월담 여효사 유허비(月潭吕孝思遺墟碑)는 성산 여씨(星山吕氏)로 처음 평촌에 입향한 여효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1968년에 세운 것이다. 금수면 행정복지센터 입구 도로변에 김윤도 효자 정려각(金潤道孝子旌閭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