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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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衡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of Do Hyeong |
이칭/별칭 | 행정 도형 신도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용각1길 55-18[보암리 6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소연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도형을 기리기 위해 1917년에 세운 비.
[개설]
도형(都衡)[1480~1547]은 본관이 성주, 자가 국전(國銓), 호가 행정(杏亭)이다. 성주군 운곡리(雲谷里)에서 태어났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인이다. 용암(龍巖) 박운(朴雲)[1493~1562]·묵재(墨齋) 노필(盧㻶)[1464~1532] 등과 교유했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1494~1558]·답설(踏雪) 여암(吕嵒)·신촌(新村) 송천주(宋天柱)·김경(金璟)·이격(李格) 등의 제자를 길렀다. 1519년 현량과로 천거되어 합격한 이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기묘사화로 인해 벼슬에서 물러나 산림에서 학문에 힘썼다. 1567년(선조 즉위년) 당시 영의정이었던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1499~1572]에 의해 복과(復科)가 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1656년(효종 7) 성주 유림들에 의해 천곡서원(川谷書院) 동쪽 사당에 봉향되었다. 정조 때 운천사(雲川祠)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도형 신도비(都衡神道碑)는 도형의 사후 371년 뒤 그의 주손(胄孫)[맏손자]인 도상훈(都相薰)과 족인(族人) 도호직(都浩直)의 요청으로, 김영한(金甯漢)이 사적을 모아 서문을 쓰고 도형을 기리는 명(銘)을 지어 1917년 5월 5일 건립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월향면 용각1리 마을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용각1리 마을 회관에서 용각길을 지나 용각1길의 우측에 있다. 성주군청으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약 8㎞ 떨어져 있다.
[형태]
좌대(座臺), 비신(碑身), 비개석(碑蓋石)으로 된 입비의 형태이다. 좌대는 귀부(龜趺), 비개석은 이수(螭首)이다. 높이 265㎝, 너비 110㎝, 두께 35㎝이다.
[금석문]
비신에는 사면에 서문(序文)과 명(銘)이 있는데, 앞면에 세로 한 줄로 ‘행정 도 선생 신도비명 병서(杏亭都先生神道碑銘并序)’라 새겨져 있다. 비신의 앞뒷면 상부의 전서(篆書)는 ‘해동명현 행정 도 선생 신도비명(海東名賢杏亭都先生神道碑銘)’이다. 비문은 김영한이 짓고, 김교헌(金敎獻)이 글씨를 썼으며, 윤용구(尹用求)가 전서했다. 도형의 사적과 성주 도씨(星州都氏)의 입향 과정, 도형의 가계, 도형을 기리는 시가 새겨져 있다.
[현황]
도형 신도비 옆에 성주 도형 정려각(星州都衡旌閭閣)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성주 지역의 인물인 도형의 행적과 함께, 성주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로 성주 지역의 유림 사회를 주도했던 성씨 중 하나인 성주 도씨의 입향 과정을 알려주는 기록을 담고 있다. 도형에 대한 성주 지역 유림들의 숭조 의식을 잘 보여준다. 또 신도비에 새겨진 내용 중, 도형이 아버지인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이 쓴 편지를 읽고 슬퍼하며 쓴 시는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도형의 그리움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이는 효 사상 및 부모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 측면에서 일정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