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06 |
---|---|
한자 | 星州都衡旌閭閣 |
영어공식명칭 | Do Hyeong Monument Pavilion, Seongj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용각1길 55-16[보암리 6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보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인 도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18년에 세운 정려각.
[개설]
성주 도형 정려각은 조선 전기 학자인 도형(都衡)[1480~1547]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과 정려각이다. 도형의 본관은 성주, 자는 국전(國銓), 호는 행정(杏亭)이다. 할아버지는 도이경(都以敬), 아버지는 진사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 어머니는 단양 우씨로, 감찰(監察) 우자선(禹子善)의 딸이다. 성주에 살면서 학문에 전념한 문인으로 1519년(중종 14년) 현량과(賢良科)가 설치되자 조광조에 의해 천거되어 대책(對策)[중종 때 실시한 현량과의 시험]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 정언, 성균관 전적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11월 기묘사화로 파직당한 후 1545년(명종 즉위년) 8월 복관되어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었으나 을사사화로 재파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진하였다. 특히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효행과 학자로서의 기품을 칭송한 안동 유생 김경찬 등 후학들이 증직과 정려를 요청하는 상언을 올려 1816년(순조 16)에 정려가 내려져 2년 뒤인 1818년(순조 18)에 건립되었다.
[건립 경위]
도형(都衡)[1480~1547]은 시와 학문에 능한 조선 전기의 문인이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제자로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는 등 관직에 있었으나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사림간의 정쟁으로 파직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도형의 제자로 송희규, 여암, 송천주, 김경, 이격 등이 있다. 1567년(선조 원년)에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이 상언을 올려 복과와 정려가 내려졌다. 성주 도형 정려각(星州都衡旌閭閣)은 도형의 뜻을 따르던 안동 유생 김경찬 등이 1816년(순조 16)에 요청하여, 1817년 예조에서 정려를 내림에 따라 1818년에 건립된 것이다.
[위치]
성주 도형 정려각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용각1길 55-16 용각1리 마을 회관과 보암1리 마을 회관 사이에 위치한다. 먹뫼 마을에 있는 이경당(李敬當) 좌측 편에 위치한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방형으로 홍살을 둘렀다. 정려각은 남향하고 얕은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두고 두리기둥을 놓았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전면에는 살대 7개를 세웠다. 가구는 5량가(五樑架)이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골기와를 얹었다. 정려각 주위에는 흙과 돌로 된 담장이 네모나게 둘러싸고 있다. 사주문(四柱門)은 전면 가운데 있으며 비각과 마주본다.
[금석문]
내부 어칸 뒷벽 위 정려판(旌閭板)에는 ‘이자통훈대부 병조좌랑 도형지려 상지17년 정축 3월 명려(李子通訓大夫兵曹佐郞都衡之閭 上之十七年丁丑三月 命閭)’라고 쓰여져 있다. 상지 17년은 1817년(순조 17)을 가리킨다.
[현황]
조선 전기의 문인 도형을 기리는 정려각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2008년 10월 27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성주 도씨 효경당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성주 지역 향촌사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