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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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尙郁 |
영어공식명칭 | Do Sanguk |
이칭/별칭 | 성세(聖世),제남(霽南),기국정(杞菊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나 |
출생 시기/일시 | 1732년 - 도상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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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86년 - 도상욱 『암곡방지』 편찬 |
몰년 시기/일시 | 1814년 - 도상욱 사망 |
출생지 | 도상욱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
거주|이주지 | 도상욱 거주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
묘소|단소 | 도상욱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주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성세(聖世), 호는 제남(霽南)·기국정(杞菊亭). 도균(都勻)[1483~1549]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처홍(都處洪), 할아버지는 도영정(都永鼎), 아버지는 도명해(都命諧)이다.
[활동 사항]
도상욱(都尙郁)[1732~1814]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은행정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뛰어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영남 유림들과 널리 교유하였다. 도상욱은 후진 양성의 장을 만들기 위해 성주 기국정(星州杞菊亭)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당시 성주목사인 성종인(成鍾仁)이 건립 비용을 지원하여서 1795년(정조 19) 2월 성주 기국정을 완성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일(一) 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대청마루, 온돌방, 온돌방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목재는 비교적 건실한 것을 사용하였고, 건축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정조(正祖) 초년에 전국 읍지를 편찬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성주읍지(星州邑誌)』의 찬수와 교정에 참여하였고,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의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였다. 한편 임진왜란 때 공신 제말(諸沫)의 포상이 누락된 사실을 상소하여, 문충(文忠)의 시호를 증시(贈諡)받고 충절사(忠節祠)에 봉안하게 하였다. 두 차례의 천거에도 관직을 사양하였다. 또한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던 청천서원(淸川書院)에서 동강 김우옹의 문집 중 빠진 내용을 인쇄하여 배포하는 일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1786년(정조 10)에 『암곡방지(巖谷坊誌)』를 편찬하였다. 문집으로 『제남문집(霽南文集)』이 있다. 4권 2책으로, 서(序)는 장승택(張升澤)이 작성하였고 발(跋)은 송준필(宋浚弼)이 작성하였다. 또한 1797년(정조 21) 『정사대동보(丁巳大同譜)』를 만들 때에 발문(跋文)을 작성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명천리 수름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