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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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夜學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지수걸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 교육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에 보통학교라도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대략 20~30% 정도의 아동만이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는 공립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학부형들의 부담에 의거해 운영되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조선의 농촌에는 사설 강습소나 야학(夜學)이 많이 설립되었으며, 이는 서산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경과]
일제 강점기 서산군의 사설 강습소와 야학은 대부분 면이나 동리 단위의 유지들, 지역 사회 운동 단체들이 설립·운영하였다. 1925년 12월에 설립된 운산면 용현리 운용강습소는 경성 대지주인 이달용(李達鎔), 1929년 3월에 설립된 고북면 신정리의 문화강습소는 지역 유지인 문병목(文秉穆)이 후원하였다.
서령청년회[회장 이천구]는 1925년 12월 읍내 유지 박원도(朴元瓙) 등의 도움 아래 26명 아동을 교육하였다. 서령청년회의 운영 비용과 학생들의 학용품은 군내 청년 회장과 지역 유지들이 제공하였다. 기타 신문 자료 등을 통해 확인되는 야학은 1928년 4월과 5월에 설립된 음암면 율목리와 도당리 야학 등이다.
『동아일보』 1927년 6월 13일자 기사에 나타난 1927년 당시 서산군의 사설 학교 및 야학 설립 현황을 살펴보면 팔봉면 진장리 학술강습소[중심인물 김용섭, 김명중], 운산면 용현리 운용강습소[중심인물 김낙현], 원북면 황촌리 관송학원[중심인물 김상배], 서산면 동문리 활성야학회[중심인물 김낙현, 박인성, 전영석, 최용안], 서산면 읍내리 진흥야학[중심 단체 읍내리 농촌 진흥회], 태안면 남문리 진흥야학[중심 단체 남문리 농촌 진흥회], 태안면 화림농원 농업 강습회[중심인물 이기승], 서산읍 여자 잠업 강습소[도 지방비 보조 설립] 등이 있다.
또한 『동아일보』 1929년 1월 12일자 기사에는 1929년 서산군의 사설 교육 기관 현황이 나타나 있다. 소원공보교는 1923년 4월 설립되었으며 교장은 소산충태랑이다. 창립 시 학생 수 130명, 1929년 학생 수 150이다. 태안로 동야학원은 1920년에 설립되었고 설립자는 김규항, 교장은 이흥학이다. 창립 시 학생 수 50명, 1929년 학생 수 70명이다. 원북면 황촌리 관송학원은 1923년 9월에 설립되었으며 설립자와 교장은 김상배이다. 창립 시 학생 수 35명, 1929년 학생 수 40명이다.
1927년 1월에 설립된 고북면 신정리 문화강습소의 설립자와 교장은 문구원이다. 창립 시 학생 수 17명, 1929년 학생 수 22명이다. 1927년 12월에 설립된 서산야학원의 설립자와 교장은 적정이다. 창립 시 학생 수 60명, 1929년 학생 수 60명이다. 부석송호야학은 1927년 1월 설립하였으며, 설립자는 봉열, 교장은 강주환이다. 창립 시 학생 수 25명, 1929년 학생 수 26명이다. 1927년 4월 설립한 태안야학은 창립 시 학생 수 40명, 1929년 학생 수 40명이다. 1925년 12월 설립된 운산면 용현리 운용강습소의 설립자는 김낙현, 교장은 권병하이다. 창립 시 학생 수 20명, 1929년 학생 수 30명이다.
[결과]
서산군의 사설 교육 기관 가운데 주목되는 곳은 환동 이씨의 막내인 이기승이 화림농원을 경영하면서 설립·운영한 농업 강습소이다. 1926년 10월경 이기승은 사비 1만여 원을 들여 농업 강습소를 설립한 뒤, 보통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을 가진 학생 15~20명을 매년 수용하여 2개년 수업제로 강습소를 운영하였다. 강습소의 경영은 경응대학을 졸업한 그의 장남 이병진(李秉鎭)이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이기승은 1930년에 농업 강습소를 화림농사 실습 학교로 개편하였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이 학교의 교원은 4명, 학생은 30여 명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의 문맹 퇴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녀 야학도 많이 개설되었다. 1933년 12월에는 강창학(姜昌學), 박영남(朴永男) 등에 의해 안면면 신야리 부녀 야학이, 1936년 7월에는 태안읍에 부녀 야학이 설립되었다. 태안읍 부녀 야학에는 장산리와 남산리 등지의 부녀자 40~50명이 참여하였는데, 강사는 당시 보통학교 훈도인 배임순(裵壬順)이었다. 1934년 6월 9일자 『동아일보』에는 서산 동문리 야학 수학 기념식 사진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서산군에도 많은 근대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무산 아동들에게 근대적인 학교는 일종의 그림에 떡일 뿐이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일제 강점기의 지역 사회 운동 단체들은 야학이나 사설 강습소를 설립하는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서산군의 경우도 많은 야학과 강습소가 설립되어 지역 사회 운동의 인적 기반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