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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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人石 |
이칭/별칭 | 방죽골 석불,방죽골 돌부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2길 28-8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여성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 문인석 현장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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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2길 28-8[웅소성리 산8-4] |
성격 | 문인석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길이, 너비) | 210㎝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에 있는 문인석.
[개설]
방죽골 문인석은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동쪽으로 약 350m 거리에 있는 방죽골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 41-1번지에 있는 김태용의 집 뒤쪽의 계곡을 따라 약 40m 정도 올라가면 조그마한 웅덩이가 확인되고, 웅덩이에서 약 60m 더 올라가면 방죽골 문인석이 쓰러져 있다. 김태용의 말에 의하면 1996년도에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현장 조사를 나와 방죽골 문인석을 수습해 간다고 하였으나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고 한다.
문인석은 무인석과 함께 무덤을 지키기 위해 그 앞에 세워지는 돌로 만든 인물상이다. 문인석은 문관 복장을 하고 손에는 홀(笏)[조선 시대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 손에 쥐던 물건]을 들고 있는데, 복두공복(幞頭公服)을 입은 것과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입은 것으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왕의 무덤에는 무인석과 문인석 한 쌍이 세워지며, 사대부의 무덤에는 주로 문인석 한 쌍이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방죽골 문인석 주변에도 다른 문인석과 함께 사대부의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형태]
지표면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땅속에 묻혀서 석상이 서 있을 수 있게 지탱해 주는 부분까지 완전히 노출되었다. 전체 크기는 210㎝ 정도로 계측되는데, 두부는 대부분이 파손되어 문인석의 다리 쪽에 방치되어 있다.
화강암 석재 1매를 사용하였으며, 몸 전체가 기둥 모양으로 되어 있다. 문인석의 대표적 모습인 복두공복을 입고 두 손을 모아 홀을 들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 부분이 파손되어 눈의 형태는 알 수 없지만, 큼직한 코 밑에 가늘게 표현한 입술이 확인된다. 홀을 맞잡은 손 부분을 간략하게 처리하였으며, 문인상의 형태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특징]
복두공복을 입고 홀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잘 묘사되었으며, 두부가 일부 파손되었지만 눈, 코, 입 등의 이목구비를 비교적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방죽골 문인석은 복두공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조성된 석상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서산시 해미면 웅소성리의 역사적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좀 더 정확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