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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601
한자 梧沙里店-靑磁-
이칭/별칭 오사리 점골 청자요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1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형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 -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1구
성격 청자 가마터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에 있는 고려 전기 청자 가마터.

[개설]

고려 시대 이후 나타나는 여러 사회상의 변화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 용기로 자기(瓷器)가 사용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고려 이전 시기 대부분의 일상 용기로는 거친 재질의 도기(陶器)와 함께 목기(木器)[칠기(漆器) 포함], 동기(銅器), 철기(鐵器)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르러 중국으로부터 자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유입되면서 일상 용기가 자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 역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위치]

서산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대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사교가 나오는데, 오사교를 건너면 서쪽으로 성연면 오사리 마을 입구가 나타난다.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쪽으로 약 1.5㎞ 정도 들어가면 소로 변의 북쪽으로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공동묘지 자리가 바로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현황]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가 위치한 지역 일대에는 전면적으로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무덤이 조성된 곳 주변에 전반적으로 다량의 청자편, 갑발편, 전돌편, 요도구들이 지표로 노출되어 있다. 가마는 대부분 무덤 조성 과정에서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남사면 하단부에서 일부 퇴적층이 확인되는데 이 또한 사면 위쪽으로부터 흘러내려 퇴적되었을 가능성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유적 주변에서 확인되는 통형 갑발을 비롯하여 가마의 벽체를 구성하고 있던 벽돌, 그릇 내저면이 완만한 곡선 형태를 이루는 선해무리굽 청자와 중국식 해무리굽 청자들은 황해도 원산리 가마나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요지[사적 제413호]와 같이 초기 청자 가마터들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들로서, 서산 지역에 초기 청자 제작 전통이 함께 전래되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특히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 주변에서 확인되는 벽돌들은 당시 가마의 벽체가 벽돌로 구축된 것임을 입증해 주는 유물로, 벽체를 벽돌로 구축한 가마[전축요(塼築窯)]는 바로 중국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고려 초기 청자 가마의 한 형태였다.

이와 같이 오사리 점골 청자 가마터는 한반도 초기 청자의 개시 시기와 제작 양상을 보여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유적 보존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져 있지 않아 유적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보존 및 정비 대책 마련이 절실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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