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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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有慶神道碑-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764년 - 김유경의 아들 김한방(金漢房)이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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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김유경 신도비와 묘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
원소재지 | 김유경 신도비와 묘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
성격 | 신도비|묘역 |
관련 인물 | 김유경(金有慶)|김한방(金漢房)|유척기(兪拓基)|윤급(尹汲) |
크기(높이,길이,둘레) | 127㎝[기단 가로 길이]|96㎝[기단 세로 길이]|195㎝[비신 높이]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인 김유경(金有慶)의 신도비와 묘역.
[개설]
김유경[1669~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산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마을의 명문 경주 김씨(慶州金氏) 가문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 합격 후 1710년(숙종 36) 문과에 급제하고 수많은 관직을 거쳐 1746년(영조 22) 좌참찬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1748년(영조 24) 숭록대부에 특진되었다. 영조의 신임이 두터워 77세에 의정부좌참찬봉조하에 치사하였다. 이후 고향 서산으로 돌아오면서 낸 「진계소(陳戒疏)」는 김유경의 임금에 대한 충정 어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1754년(영조 30)에 효정(孝貞)이라는 시호와 효자 명정을 받았다.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한다리]에 김유경 정려(金有慶旌閭)가 있다.
[건립 경위]
김유경의 신도비는 1764년(영조 40) 김유경의 아들 김한방(金漢房)이 건립하였다. 비문은 외손자인 유척기(兪拓基)가 찬하고 전액(篆額)을 썼으며, 윤급(尹汲)이 글씨를 썼다.
[위치]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약 250m 정도 가면 남쪽 연화골로 들어가는 소로가 있고, 이 길로 100m 정도 가면 길가에 김유경의 신도비가 북서향으로 세워져 있다. 김유경의 묘소는 김유경의 신도비 남쪽 낮은 언덕 정상부에 있는데, 풍수상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는 연화부수형(蓮化浮水形) 명당의 자리라고 전해진다.
[형태]
신도비는 가로 127㎝, 세로 96㎝, 두께 53㎝의 화강석 기단 위에 높이 195㎝, 너비 81㎝, 두께 40㎝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4면에 비문을 음각하였다. 묘역에는 문인석과 석등, 망주석 등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조각 기법이 특이하여 주목되는데, 후손들은 이 석물들을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알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훼실될 뻔하였던 것을 되찾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김유경 신도비와 묘역은 서산 지역 내에서 경주 김씨 가문의 위상을 보여 주는 유적이며, 당시 경주 김씨 가문의 활동과 위상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