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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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實 |
영어음역 | Yu S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정의]
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서령[서산]. 정당문학[고려 시대 중서문하성에 설치된 종2품의 관직]을 지낸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서령부원군 유성계(柳成桂)이며, 아버지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유숙(柳淑)이다.
[활동 사항]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재차 침입해 오자 왕이 안동으로 피난하였고, 그때 왕을 호종하던 유실(柳實)은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1363년 김용(金鏞) 일파가 흥왕사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에도 왕을 피난시켰으며 역시 2등 공신이 되었다.
우왕이 즉위한 후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고, 1376년(우왕 2) 전라도병마사로 있을 때 왜구를 실은 20여 척의 배가 임주(林州)에 침입해 오자 지익주사(知益州事) 김밀(金密)과 더불어 싸워 물리쳤다. 같은 해 왜구가 또 낭산(朗山)[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풍제현(豐堤縣)[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등지에 침입하자 전라도원수 유영(柳濚)과 함께 싸워 30여 명을 죽이고 노략질당한 소와 말 2백 필을 찾아 주인에게 돌려주니 왕이 기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 이듬해인 1377년(우왕 3)에 또 해주와 평주에 왜구가 침입해 오자 최영(崔瑩)·변안열(邊安烈) 등과 함께 이를 막았다.
그 뒤 왜의 기병 300여 기가 고부·태인 등지에 침입하여 관사를 불태우자 이를 추격하였지만 실패하여 전주를 함락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적이 물러가며 귀신사(歸信寺)에 주둔할 때 유실이 다시 쳐서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왜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헌사(憲司)[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아 벼슬이 삭탈되어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나 밀직부사상의(密直副使商議)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