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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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吉 |
영어음역 | Yi Wong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출생 시기/일시 | 1580년 - 이원길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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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병자호란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636년 - 이원길 졸 |
묘소|단소 | 이원길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원수부별장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할아버지는 변성군(邊城君) 이계연(李繼連)이고 아버지는 이유직(李惟直)이다. 이계연이 광주목사를 지낸 서산 송씨 송효명(宋孝命)의 손녀사위가 되는 연원으로 서산에 입향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이원길(李元吉)[1580~1636]은 무과 급제 후 초계군수, 함종현령, 봉산군수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봉산군수 재임 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원수부(元帥府)의 별장(別將)으로 특임되어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가(扈駕)하였다. 같은 해 12월 29일 도체찰사(都體察使) 김류(金瑬)의 지휘 아래 남한산성에서 북문수문장으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별장 신성립(申誠立), 지여해(池汝海) 등과 전사하였다.
[묘소]
묘소는 원래 서산시 팔봉면 호리 삼박골에 예장되어 있던 것을 최근 선영이 있는 수석동 소탐산(蘇耽山) 변성군 이계연의 묘 아래로 이장하였다. 종중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원길이 전사하자 그가 타던 말이 장군이 입던 옷가지를 물고 고향인 팔봉면 호리 삼박골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에 집안사람들이 말을 앞세워 이원길의 시신을 찾아와 예장하였다고 한다. 후에 충마(忠馬)가 죽자 이원길의 묘 앞에 묻고 관리하다가 이원길의 묘를 이장할 때 함께 옮겼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가 다시 한 품계 높여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1757년(영조 33) 10월 19일 이원길을 치제(致祭)[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를 제사 지내는 일]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