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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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好尹 |
영어음역 | Gim Ho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525년 - 김호윤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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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75년 - 김호윤 졸 |
거주|이주지 | 동암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현동(普賢洞) |
성격 | 유생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다. 아들은 안기도 찰방(安奇道 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다. 손자는 김홍욱(金弘郁)이다. 1500년대 중반 김연이 정계 은퇴 후 서산에 자리를 잡아 경주 김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모여 살았다. 마을에 큰 다리가 있어 유계리의 경주 김씨를 ‘한다리 김씨[大橋 金氏]’라고 부르게 되었다.
[활동 사항]
김호윤(金好尹)[1525~1575]은 서산의 사림들과 함께 서산향교의 이건에 참여하였다.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향교는 관아의 동쪽에 세우는 것이 상례인데 서산향교는 서문 밖에 있었다. 이에 한영희(韓永禧)를 비롯해 김호윤(金好尹), 김호열(金好說), 박영언(朴英彦), 이유인(李惟仁), 문성해(文成海) 등 서산의 사림들이 수차례 이건을 요청하여 옮겨 지었다.
[묘소]
묘소는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다. 서산 석현에 초장(草葬)[시체를 임시로 묻고 이엉으로 덮어 둠]으로 장사 지냈다가 나중에 용현리에 매장하였다. 묘비 글은 손자 김홍욱이 썼다.
[상훈과 추모]
승정원좌승지로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