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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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海美聖堂 |
영어음역 | Haemiseongdang |
영어의미역 | Haemi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해미본당,해미성당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5로 30-1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태 |
설립 시기/일시 | 1985년 4월 10일 - 서산 동문동 성당에서 분리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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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11월 19일 - 신축 성당 완공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1월 30일 - 해미성당에서 해미순교성지 분리 |
최초 설립지 | 해미성당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12-8 |
현 소재지 | 해미성당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5로 30-10[읍내리 312-8] |
성격 | 천주교 성당 |
설립자 | 천주교 대전교구 |
전화 | 041-688-1557 |
팩스 | 041-688-4366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해미는 천주교 박해기 신자들의 가장 참혹한 처형지였으며,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천주교회는 순교 사적지로서 해미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해미에는 많은 순례자들의 지속적인 순례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순례자들을 위한 성지가 순교 유적지에 조성되어 있지만 성지가 조성되기 이전까지의 성역화 작업은 해미성당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설립 목적]
1985년 해미성당이 설립될 당시 관할지 신자 수는 482명이었다. 소속 신자가 매우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으로 승격하여 신부를 파견한 것은 해미 지역이 갖는 성지로서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초대 윤종관 주임 신부를 비롯하여 해미성당에 부임한 신부들은 소속 신자들과 더불어 각종 성역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갔으며, 이는 2001년 해미순교성지가 독립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변천]
해미는 참혹한 순교지임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영위하던 교우촌과 공소가 많았다. 특히 서산 해미읍성 내에 지금의 감옥이 복원되기 전 옥터 곧 호야나무 곁에는 1966년에 지어진 해미공소가 있었다. 순교자를 기억하고자 했던 신자들의 의지로 마련된 것이었다. 이후 서산 해미읍성의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성내의 건물이 철거되자, 해미공소는 1983년에 현재의 해미성당이 위치한 부지를 마련하여 강당을 짓고 이전하였다.
1985년 4월 10일 해미공소는 성당으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6월 ‘해미순교선열현양협의회’가 발족되어 본격적으로 해미순교성지의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1998년 약 2만 3000㎡의 부지를 확보 하였으며, 2001년 1월 30일 해미순교성지가 성당과 분리되면서 해미성당은 지역 교인들을 위한 성당으로 남게 되었다.
[현황]
현재 주임신부는 김종민 사도 요한 신부이며, 소속 신자 수는 867명이다. 관할 지역은 서산시 해미면과 고북면,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일부 지역으로 유지되고 있는 공소는 없다. 해미순교성지가 분리된 이후 보통의 성당들처럼 해당 지역을 위한 사목(司牧)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해미성당의 설립은 처음부터 중요한 순교 사적지로서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성당 설립 초기부터 해미성지가 독립될 때까지 성역화 사업의 선두에 있었다. 한편, 순교지에 대한 기념은 성당 설립 이전에 해미공소 신자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호야나무 곁에 부지를 마련하여 예배소를 마련한 일련의 노력들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므로 해미성당과 이전의 해미공소는 오늘의 해미순교성지가 있게 된 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