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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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坪里文殊山山神祭-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수평리 문수산 산신제와 서낭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저녁에 수평리 왜벌[瓦坪]의 공터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수평리 왜벌은 20여 호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왜벌이란 옛날에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자리하기 때문에 유래된 지명이다.
이 마을의 제당은 산제당과 서낭당이 상당과 하당을 이루고 있다. 상당 의례인 산신제는 음력 1월 14일 초저녁에 지내고, 이튿날인 정월 대보름 해질 무렵에 서낭제를 지냈다. 그러나 이틀에 걸쳐 제를 지내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근래에는 음력 1월 14일에 산신제와 서낭제를 통합하되, 만일 마을에서 제를 앞두고 초상 등의 부정한 일이 있으면 음력 이월 초하루[음력 2월 1일]로 날짜를 연기한다.
제의 비용은 호당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부담한다. 제물은 산신제와 서낭제를 별도로 준비하는데, 산신제의 제수와 준비물은 메 1되 3홉, 생쌀 3되 3홉[불밝이쌀], 청수, 불밝이용 들기름, 초, 백지 등이고, 서낭제는 절구로 찧은 쌀 3되 3홉, 냄비, 조리, 백지 등이다.
제관은 도가와 축관, 제관을 뽑는다. 부정이 없는 정결한 사람으로 선정하는데, 특히 제수를 준비하는 도가는 젊은 여성이 없고 가족이 단출한 깨끗한 집이어야 한다. 젊은 여성을 피하는 것은 월경으로 인한 피 부정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가를 비롯한 제관은 서낭제가 임박하면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매일 목욕재계하며 근신한다.
[연원 및 변천]
여느 마을의 동제와 마찬가지로 산신제와 서낭제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내는데, 매년 제를 모셔야 주민들의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산신제와 서낭제를 따로 지냈으나 지금은 산신제를 겸하여 서낭제를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문수골 왜벌마을 뒷산의 문수산에 산제당이 있다. 당집이나 특별히 안치된 신위는 없고, 단지 공터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를 지냈다. 서낭당은 고개에 자리했는데, 예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낭목으로 치성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산제당이나 서낭당이 모두 없어지고 마을의 공터에서 제를 지낸다.
[절차]
산신제는 제관과 축관 두 사람만 올라가서 제물을 진설한 뒤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제를 지낸다. 제관이 20~30번 계속해서 절을 하며 정성을 드리면, 축관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낭독한다. 이어서 가가호호의 소지를 모두 올려 준다. 산신제는 매우 엄한 편이어서 제관과 축관은 산제당으로 올라가서 제를 마칠 때까지 일절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서낭제도 제관의 수만 다를 뿐 제의 절차는 산신제와 동일하다. 다만 각 세대주의 소지를 올리는데 더욱 정성을 드린다고 한다.
[부대 행사]
서낭제를 마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음복을 겸한 회의를 열어 자금을 결산하고 흥겹게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