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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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坡平尹氏尹民獻一家告身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권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세거한 파평 윤씨 윤민헌 집안의 관원 임명장.
[개설]
조선시대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산현동 일대]에서 세거한 파평 윤씨(坡平尹氏) 충정공파 윤민헌(尹民獻) 일가의 17~19세기의 고신류(告身類) 110점을 이른다.
[제작 발급 경위]
1989년 시흥시가 출범한 이래 시흥시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의 이한기(李漢基)[필명 이승언] 상임위원의 노력으로 1995년 발간된 『시흥향토문화총서』전 3권과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발간된 『사진으로 보는 시흥』전 4권은 시흥 지역사 연구의 선구적인 업적이었다. 이와 함께 2004년 3월부터 『시흥시사』편찬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흥시 곳곳의 마을과 문중에 대한 조사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자료가 조사 발굴되었다.
「파평 윤씨 윤민헌 일가 고신류」와 함께 이상기 일가 준호구, 관곡지를 보전해 온 안동 권씨(安東權氏) 화천군파, 신안 주씨(新安朱氏)의 명문을 통해 본 매매 문서를 시흥시청 향토사료실에서 묶어 2000년 『시흥역사문화총서』 제1권 『고서·고문서로 보는 조선시대 시흥』을 발간하였다.
[형태]
고신류로는 교지(敎旨)[추증 교지], 외명부(外命婦) 교지[추증 교지], 이조 교첩(敎牒), 문·무과 급제 교지[홍패(紅牌)], 생원·진사 입격 교지[백패(白牌)], 이조 차첩(差帖) 등이 있다.
[구성/내용]
윤민헌[1562~1628] 일가는 경화 사족(京華士族)으로 안산군에 정착하여 세거한 명문 가문이다. 이들 일가는 서인·노론의 당색을 이어 나갔는데, 이는 윤민헌이 성혼(成渾)의 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인의 분립 이후에는 대체적으로 소론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이들 가문은 당색에 고상한 절조가 있었다기보다 중도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중앙의 대표적인 관료 집단으로 명망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들 일가의 인물들은 벼슬을 하면서 정국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외방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선영이 있는 안산군 향리로 물러나기도 하고 심지어 파직당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가문이 정치적으로 큰 몰락을 겪지 않고 자손 대대로 꾸준히 관직을 이어 나갔다.
고신(告身)은 문무 관원의 임명장으로 4품 이상에게 교지를 내렸으며 5품 이하 관원에게 문관은 이조, 무관은 병조에서 교첩을 내렸다. 외명부에서는 문무 관료의 처나 모에게 품계를 남편이나 아들에 준하여 내렸다. 과거 합격자증도 고신이다. 또한 문·무과 합격증은 붉은색 종이이므로 홍패, 생원·진사 및 잡과는 흰색 종이라 백패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고신이다. 그리고 고신은 아니나 주로 7품 이하 관원과 속관, 향리, 제관을 임명할 때 첩(帖)[차첩]을 내렸다.
「파평 윤씨 윤민헌 일가 고신류」는 110점에 이르며 교지 87점[추증 교지 4점], 외명부 교지 7점[추증 교지 4점], 이조 교첩 5점, 문과 급제 교지 4점, 생원·진사 입격 교지 5점, 이조 차첩 2점 등이다. 고신류는 17세기 초[1609년]에서 19세기 후반[1876년]까지 무려 260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자취를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파평 윤씨 윤민헌 일가 고신류」는 윤민헌으로부터 윤완(尹玩)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자료가 끊어지지 않고 전해 내려왔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가치 및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 어느 한 일가가 정치적 몰락 없이 이렇게 꾸준히 가세를 유지한 경우는 드물다. 이 자료는 조선 후기 정치사 및 인물과 가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재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부경 사족(赴京士族)의 거향(居鄕) 양상 및 그 변화상을 규명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