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900682
한자 牛市場
영어공식명칭 Cattle Market
이칭/별칭 소시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시흥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유선영시지영

[정의]

경기도 시흥 지역의 농가에서 소를 매매하기 위해 개설된 장소.

[개설]

시흥시에서 소의 매매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우시장은 뱀내장[사천장]과 삼거리장 두 곳이 있었다. 뱀내장은 지금의 시흥시 신천동에 있었던 옛 장터이고, 1980년대 중반에 없어졌다. 삼거리장은 지금의 시흥시 능곡동에 있었던 옛 장터이고, 1960년대 초 폐시되었다. 그리고 금이동 거멀마을에는 소가 묵는 마방이 여럿 있었다.

[뱀내장]

우시장의 경우 시흥 전 지역에서는 뱀내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였다. 『조선의 시장경제(朝鮮の市場經濟)』[조선총독부, 1926]의 기록에 따르면 뱀내장의 1년간 축류 매매고는 23만 6180엔으로 수원장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조선의 이출우(朝鮮の移出牛)』[조선총독부, 1931]에 기록된 우시장에 내놓은 소를 보면 수원의 경우는 2만 4300두, 안성 9,900두, 오산 9,100두, 뱀내장은 9,000두로 우시장 중 큰 시장에 속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김성훈의 『한국농촌시장의 제도와 기능 연구』[국립농업경제연구소, 1977]에는 수원의 우시장에 내놓은 소가 500두, 뱀내장 200두, 황어장 130두, 안양 120두, 소사 80두로 뱀내장이 수원 다음으로 많았으며, 많을 때는 200~300마리의 소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뱀내장은 축산물을 제외한 기타 품목들의 매매는 미진하였다. 축류 매매고가 23만 6180엔인데 반해 농산물 159엔, 수산물 30엔, 직물 10엔, 잡품 947엔으로 축류 이외의 품목 거래는 매우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뱀내장 주변으로는 소 20마리가 묵을 수 있는 큰 규모의 마방이 4개가 있었다. 마방은 소가 묵는 곳으로 잡곡과 짚을 섞어서 죽을 끓여 먹였다. 마방은 뱀내장이 폐시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삼거리장]

삼거리장에는 원래 우시장이 서지 않았지만, 박경선과 정인섭이 우시장 터를 기부하여 1938년 10월 30일에 우시장이 개설되었다. 능곡동 삼거리마을 정미소 자리를 중심으로 섰는데 이를 ‘장마당’이라 불렀다. 삼거리장에는 소 장수들을 따라다니는 봇짐 장수들이 좌판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 규모는 매우 작았다.

[금이동 거멀 마방]

금이동 거멀마을에는 소 장수를 하는 사람이 네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마방을 함께 운영하였다. 이들 외에도 마을에 소가 들어왔을 때 외양간에 소를 들이고 쇠죽을 끓여 먹이는 집이 여럿 있었다. 거멀마을 마방은 규모가 작아 한 집에 두세 마리의 소가 머물 수 있었고, 트럭이 소를 운반하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생활 민속적 사항]

농민들이 우시장에 나오는 이유는 일소를 구하거나 키워서 되팔기 위한 송아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뱀내장에서 소의 매매가 활발했기 때문에 시흥 지역의 농민들은 주로 뱀내장을 이용했다. 소나 송아지를 팔 때 농민들이 직접 소를 끌고 우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동네 소 장수에게 소를 파는 경우도 많았다. 시흥 지역에는 예전에 동네마다 소 장수가 있어서 소를 팔아주는 일을 수행했는데, 농가에서 소를 사고 우시장에 소를 팔아 구전(口錢)[흥정을 붙여 주고 그 보수로 받는 돈]을 챙겼다. 소 장수가 농가에 소를 가지러 가면, 끈이 풀린 소가 도망가서 잡으러 다니느라 혹은 소가 차를 타지 않으려고 버텨서 애를 먹기도 하고, 소와 정이 든 가족들이 소와 헤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 장수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소를 사는 경우도 있지만, 수원장 같은 데서 소를 사다가 뱀내장에 팔기도 했으며, 소 중개인이 소 장수를 겸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현황]

뱀내장은 소래농협 본점 건너 파출소가 있던 자리였다가, 길을 넓히면서 동남쪽으로 20~30m 아래로 옮겼고, 마지막으로 시흥시재활용센터에서 계수동 방면으로 400~500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다가 1980년대 중반에 없어졌다. 삼거리장능곡동 삼거리마을 정미소 자리 뒤로부터 해서 예전 농협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장이 섰다고 한다. 삼거리장6.25전쟁 이후 상권이 약화되었고, 능곡동 주민들이 삼거리장 회생을 위해 씨름대회를 여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으나 1960년대 초 폐시되었다. 특히 뱀내장이 주목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경기 남부의 큰 우시장의 경로가 안성장·오산장·수원장을 거쳐 뱀내장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소를 팔고사는 일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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