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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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子-明堂發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12월 -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 『순창 문화유산 탐구』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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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황앵탁목혈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용지 마을 |
성격 | 풍수담|명당 발복담 |
주요 등장 인물 | 기정진의 할아버지|기정진 |
모티프 유형 | 명당 발복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에서 노사 기정진의 할머니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순창이 배출한 대유학자이다.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은 노사 선생의 할아버지가 훌륭한 자손을 얻기 위해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라는 명당을 찾아 노사의 할머니 묘를 썼는데, 후에 태어난 소년 노사가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고, 이것이 ‘황앵탁목혈’의 명당 발복을 받게 되는 징표였으며, 그 명당 발복을 받아 노사가 대유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명당 발복담이자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9년 전북 전통문화 연구소가 집필하고 순창 문화원에서 펴낸 『순창 문화유산 탐구』Ⅱ의 205~206쪽에 실려 있다.
[내용]
기정진은 순창이 배출한 당대의 걸출한 유학자이다. 기정진은 7~8살 때 경사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1831년 진사를 하였으며, 그 뒤 참봉에서 참판에 이르는 벼슬을 수차례 제수 받았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기정진의 할아버지는 훌륭한 자손을 두기 위해 장성, 담양, 순창 등지를 여러 해 동안 다니면서 명당을 찾았다. 특히 장성, 담양, 순창 세 지역의 경계에 있다는 ‘황앵탁목혈’을 찾기 위해 거의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무슨 일로 그리 자주 이곳을 찾소?” 하고 물으면 “눈먼 손자 하나 보러 다닌다오.”라고 선문답과 같은 아리송한 말을 하였다.
기정진의 할아버지가 찾는 황앵탁목혈이란 문자 그대로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형국의 혈’이다. 이러한 황앵탁목혈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명당의 모양이 마치 새 한 마리가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형국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무덤 뒤의 바위가 꾀꼬리 색처럼 노란색을 띠고 있거나, 무덤을 쓰고 난 뒤 노란색으로 변해야 한다. 이러한 ‘황앵탁목혈’에 묘를 쓰면 3대나 8대 후손 중에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3대 후손 중에서 한쪽 눈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야 명당 발복이 제대로 된 것임을 입증할 수 있다. 삼대 후손 가운데 눈먼 후손이 나와야 하는 것은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대니까 나무에 구멍이 날 것이라는 사실에서 유추하여 한쪽 눈이 없는 후손이 나와야 명당 발복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기정진의 할아버지는 몇 년에 걸친 노력 끝에 ‘황앵탁목혈’을 찾았다. 그곳은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용지 마을에서 장성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바로 옆에 있었다. 기정진의 할아버지가 찾은 혈 뒤에는 커다란 바위가 두 개 버티고 서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꾀꼬리 머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그 바위 정상에서 보면 거대한 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또 혈이라는 곳으로 알려진 자리는 모양이 마치 한 마리 새가 달라붙어 있는 듯 기묘하였다.
이 명당을 찾고 난 뒤 기정진의 할머니 윤씨가 세상을 떠났다. 기정진 할아버지는 자기 부인을 이곳에 안장하였다. 그러고 나서 손자 중에 한쪽 눈이 먼 손자가 태어나기를 고대하였다. 며느리들이 출산을 할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이 한쪽 눈이 없는가 여부였다. 두 눈이 멀쩡하게 태어나면 실망하는 빛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정진이 태어났을 때에도 두 눈이 멀쩡하였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어린 기정진은 대나무로 만든 장난감 활을 가지고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였다. 그때 기정진은 포개 놓은 멍석더미 한쪽 끝에 숨어 멍석 구멍에 한쪽 눈을 들이대고 반대편 쪽 아이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때 상대편 아이 하나가 멍석의 반대편 구멍에다 대고 활을 쏘았다. 화살은 그대로 소년 기정진의 눈에 박혔다.
손자가 실명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은 모두 가슴 아파하였으나 기정진의 할아버지는 오히려 기뻐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명당 발복이 시작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쯤 할머니가 묻힌 무덤 뒤의 커다란 바위가 노란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 명당 발복으로 기정진이 그와 같은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
[모티프 분석]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발복’이다. 명당을 찾아 묫자리나 집터를 잡으면 후손이 번창하고 가문이 영광을 받게 된다는 풍수지리설은 오랜 세월 동안 민간 신앙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높은 관직에 오르거나 명문가의 사람에 대한 뒷이야기에는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도 바로 명당에 묫자리를 써서 얻게 된 복에 기반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황앵탁목혈’은 3대손이 복을 받게 된다는 혈자리인데, 기정진의 할아버지는 그곳을 묫자리로 썼고, 이로 인해 기정진이 대유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외눈박이 손자의 명당 발복」 이야기는 훌륭한 사람에 대한 신비성을 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