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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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亘璇 |
이칭/별칭 | 백파(白頗),호남 선백(湖南禪伯)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형성 |
[정의]
조선 후기 순창에서 활동한 선승(禪僧).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속성은 이씨. 법호는 백파(白坡). 아버지는 이종환(李宗煥)이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이다. 긍선(亘璇)은 법명이다.
[활동 사항]
긍선[1767~1852]은 1767년(영조 43) 전라북도 무장에서 출생하였다. 12세 때 고창 선운사(禪雲寺)로 출가하여 시헌(詩憲) 장로(長老)에게 가르침을 얻은 이후, 연곡 화상(蓮谷和尙)에게 구족계를 받고, 1790년(정조 14) 지리산 영원암(靈源庵)으로 가서 설파(雪坡) 상언(尙彦)[1707~1791]에게 구족계를 이어 받았다. 평안북도의 초산 용문암(龍門庵)에서 수도하다가 마음이 크게 열려 지리산에 있던 스승 상언을 찾아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종지를 받았다.
순창 영구산(靈龜山) 구암사(龜巖寺)로 돌아와 설봉(雪峰) 회정 대사(懷淨大師)[1678~1738]의 법통을 계승하였다. 1792년(정조 16) 백양산(白羊山) 운문암(雲門庵)에서 100여 명의 학인을 가르치다가, 1811년(순조 11) 문득 법의 진체(眞體)를 깨닫고 평안북도 초산 용문암으로 들어가 5년 동안 정혜(定慧)를 닦은 후, 다시 청도(淸道)의 운문사에 법당을 세우고 선지를 강론하였는데 청중이 언제나 100여 명에 이르렀다. 1830년(순조 30) 구암사로 옮겨 법당(法幢)을 세우고 선학(禪學)을 가르쳐서 학도들이 구름처럼 모여 ‘호남 선백(湖南禪伯)’이라 칭하였다. 1852년(철종 3) 86세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불법의 진실한 뜻이 문자에 있지 않고 도를 깨닫는 데 있는데도 스스로 법에 어긋난 말만을 늘어놓았다”고 하면서 참회한 뒤, 임제 삼구(臨濟三句)로써 선(禪)과 교(敎)를 모두 묶어서 『선문수경(禪文手經)』을 지었다.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 이외에 의리선(義理禪)이 있다고 하였다. 제 일구의 선을 ‘조사선’, 제 이구의 선을 ‘여래선’이라 지칭하여 이 두 선을 ‘격외선(格外禪)’이라 하고, 제 삼구의 선을 ‘의리선’이라 하였다.
긍선은 ‘조사선’을 임제 삼구 가운데의 삼요(三要)[大機圓觀·大用全彰·機用齊施]에 서로 해당한다고 하였고, ‘여래선’을 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에 서로 해당한다고 하였으며, ‘의리선’을 유무(有無)의 변별구(辨別句)에 서로 해당한다고 말하였다. 즉 ‘조사선’은 만법(萬法)과 진여(眞如)가 같은 것이니 마음이 곧 부처요, 현상이 곧 실재(實在)이므로 사사물물(事事物物)이 각각 그 지위에서 진리를 드러낸다고 깨닫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고, ‘여래선’은 만법을 통합하여 한 마음을 드러내고 한 마음이 본체의 실재임을 깨닫는 것이므로 묘법(妙法)을 아직 체험하지 못하여 부처를 심오(心悟)하지 못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며, ‘의리선’은 말과 이치의 길을 통해 사(事)와 이(理), 유(有)와 무(無), 현상(現象)과 실재의 관계를 능히 변별하지만, 아직도 심묘(心妙)의 체험에 도달하지 못한 구두선(口頭禪)·문자선(文字禪)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백파는 각 선문(禪門)의 ‘선(禪)’을 평하여 임제종(臨濟宗)·운문종(雲門宗)을 ‘조사선’에 배당하고, 조동종(曺洞宗)·위앙종(潙仰宗)·법안종(法眼宗)을 ‘여래선’에 돌렸으며, 우두종(牛頭宗)·신수종(神秀宗)·하택종(荷澤宗)의 삼종(三種)을 ‘의리선’에 배당하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긍선이 달마를 닮았다 하여 자신이 받들어 오던 달마상을 백파에게 보내면서 찬(讚)을 지어 “기연도 기이하다. 달마는 서쪽으로 갔는데 그 보신이 동방에 나타났는가”라고 하였고, 백파의 비문을 지으면서 비석 전면의 ‘대기대용(大機大用)’이란 큰 글씨로 특서(特書)하지 않는다면 족히 백파의 비가 될 수 없다고 하고 찬을 하여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으나, 기상은 수미산을 누를 만하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 섬기듯하니 가풍이 아주 진실하도다! 그 이름 긍선이라 하였으니 더할 말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저서로는 『정혜 결사문(定慧結社文)』, 『선문수경』, 『육조 대사 법보단경 요해(六祖大師法寶壇經要解)』 1권, 『태고암가과석(太古庵歌科釋)』·『식지설(識智說)』 1권, 『오종 강요 사기(五宗綱要私記)』 1권, 『선문 염송 사기(禪門拈頌私記)』 5권, 『금강경 팔해경(金剛經八解鏡)』 1권, 『선요기(禪要記)』 1권, 『작법 구감(作法龜鑑)』 2권, 문집인 『백파집(白坡集)』 4권이 있다.
[묘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에 부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