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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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有縣 |
영어공식명칭 | Buyu-hyeon |
영어음역 | Buyu-hyeon |
영어공식명칭 | Buyu-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이욱 |
[정의]
통일신라시대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형성 및 변천]
부유현은 백제 때는 둔지현(遁支縣)이었다. 757년(경덕왕 16) 둔지현에서 부유현으로 개칭되었고, 동복, 구례와 함께 곡성군(谷城郡)의 속현이 되었다. 996년(성종 15) 광양현, 여수현, 돌산현 등과 같이 전국 12군 가운데 하나인 연해군[오늘날 순천]에 속하였다. 1036년(정종2) 승평군(昇平郡)의 관할 구역에 들어갔다. 1310년(충선왕 2) 여수현, 돌산현 등과 함께 순천부의 속현이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순천도호부에 속하였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부유현을 다스리는 기관이 있었던 곳은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倉村里)로 추정된다. 이곳 명칭은 조선 후기까지 부촌리(富村里)였으며, ‘부유’와 의미가 같고, 유물이 발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과 담양을 잇는 도로에 연해 있어 발달하였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에 부유현 관련 기록이 나온다.
부유현은 물산이 풍부하여 고려 때 왜구의 침탈에 시달렸던 지역이다. 왜구의 침략이 자주 일어나던 고려 말 보성 해안으로 올라온 왜구가 보성강을 타고 부유현에 들이닥쳐 송광사를 침탈하고 그 일대에서 약탈을 자행한 적도 있다.
1598년(선조 31) 왜교성전투가 치열하던 시기에 부유의 치소인 창촌은 남원에서 왜교성을 오가는 조·명연합군이 수시로 주둔하며 전력을 재정비하는 등 후방 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특히 조·명연합군의 총사령관 유정(劉綎)[1558~1619]이 부유에 주둔하면서 휘하 장수들을 내보내 왜교성을 정찰하고 감시토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