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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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眞覺國師圓照塔 |
영어공식명칭 | Wonjotap Pagoda for State Preceptor Jingak of Songgwangsa Temple |
영어음역 | Wonjotap Pagoda for State Preceptor Jingak of Songgwang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Wonjotap Pagoda for State Preceptor Jingak of Songgwangsa Temple |
이칭/별칭 | 송광사 진각국사탑,송광사 원조탑,송광사 광원암 진각국사탑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43]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엄기표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광원암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진각국사의 부도.
[건립 경위]
고려시대 순천 송광사 출신 16국사의 부도 중에 9기가 송광사에 건립되어 전해지고 있다. 16국사 부도 중에서 송광사 경내를 중심으로 서편에 있는 광원암에 송광사 2세 국사였던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의 부도인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이 건립되어 있다.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송광사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강진 월남사지에 세워져 있는데, 관련 비문에 의하면 혜심이 1233년(고종 20) 병이 들자 국왕이 어의(御醫)를 보내 진찰토록 하였다고 한다. 진각국사 혜심은 병이 호전되지 않자 간병과 요양 차 월등사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진각국사 혜심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고 1234년 6월 26일 월등사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설법을 한 후 입적한다. 이에 마곡을 비롯한 혜심의 문도들은 입적 다음 날인 1234년 6월 27일 월등사 북쪽 봉우리에서 다비한 후 유골을 수습하여 수선사로 옮겼다. 국왕은 진각국사 혜심의 입적 부음을 듣고, 국사(國師)로 추증했다. 화장한 유골을 수선사[현 순천 송광사]로 옮긴 후 다음 해인 1235년 5월경에 현재의 위치에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을 세웠다.
[위치]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편의 조계산 골짜기에 있는 광원암의 북편에 있다.
[형태]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신라와 고려 전기 건립된 팔각당형 양식을 계승하면서 전체적인 규모와 양식 등을 간략화시킨 조영 기법을 적용하였다.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지대석이 평면 사각형으로 마련되었으며, 높게 구성되었다. 지대석 상부에는 원형의 대석[돌 위에 다시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을 높게 올려 하대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하대석은 하부에 팔각형 괴임을 마련한 후 그 위에는 원형으로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하대석 상부에는 원형의 괴임이 있고, 상대석 하부에도 원형의 받침이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원형의 받침이 있고, 그 위에 8엽의 앙련문[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을 장식하였다. 연화문은 길쭉한 연잎 형으로 외곽에 돋을대를 돌렸으며, 연화문 사이마다 간엽을 배치하였다. 상대석 상면은 연주문을 반원형으로 가득 장식하고, 가운데에는 1조의 돋을대를 활용하여 팔각형으로 구획한 후 홈을 만들어 탑신석이 그사이에 끼워져 고정되도록 하였다.
탑신석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상하로 높게 치석 하여 마치 팔각형 석주처럼 마련하였다. 각 면 모서리에 우주는 표현하지 않았으며, 남면에는 사각형으로 구획[39×12㎝]한 후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세로로 명문을 음각하였다. 명문이 음각된 남쪽 좌우 면과 북쪽 좌우 면에 사천왕상을 새겼다. 이처럼 탑신석에 사천왕상과 같은 부조상을 배치하는 것은 수호나 공양의 의미가 있었다. 옥개석[지붕돌]은 하부에 1단의 받침을 두었다.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 처마는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처마 하부와 지붕면이 만나는 처마 면을 높게 하여 강직하면서도 둔중한 인상을 주고 있다. 처마면 상부는 지붕면에서 내려온 기왓등이 마루 끝에서 치켜 올라가도록 하여 반전 수법을 적용하였다. 지붕면은 경사지게 내려오며, 기왓등과 기왓골의 표현이 분명하다. 지붕면이 만나는 합각부에는 내림마루를 높게 마련하였으며, 마루 끝에는 귀꽃을 돌출된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옥개석 상부에는 구름문이 선각 된 상륜부 받침을 마련하고 그 위에 상륜부를 올렸다. 상륜부는 단판 8엽의 연화문이 장식된 복련석과 앙련석을 동일석으로 하여 보주받침대로 삼았다. 그 위에 원형으로 된 받침석과 보주석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이처럼 송광사 16국사의 부도들은 복잡한 상륜부를 간략화시켜 간단하게 몇 개의 부재만을 결구하여 마련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황]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순천 송광사 광원암의 북쪽 편에 있는데, 능선을 깎아 좁게 대지를 조성한 다음 정면에는 계단을 마련하고, 나머지에는 석축을 돌려 한가운데 부도를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탑신석 앞면에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비문에 의하여 구체적인 건립 시기를 알 수 있으며,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 정면에 세로로 시호와 탑호를 음각하여 분명하게 주인공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고려시대 순천 송광사 출신 2세 국사의 부도인데, 탑비가 강진 월남사지에 세워져 있어 부도와 탑비가 서로 다른 사찰에 건립된 드문 사례이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 들어와 부도와 탑비를 건립할 때 다양한 방식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송광사 진각국사 원조탑은 보조국사 감로탑 이후 송광사 출신 국사들의 부도 양식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