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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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李氏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Lee Clan |
영어음역 | Gwangsan Lee Clan |
영어공식명칭 | Gwangsan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욱 |
입향 시기/일시 | 1589년 - 광산이씨 이천근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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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광산이씨 입향지 -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 |
세거|집성지 | 광산이씨 집성지 - 전라남도 순천시 조례동 |해룡면 두지리|서면 운평리|서면 흥대리|황전면 미초리|황전면 금평리|별량면 진목리|쌍암면 장기리|상사면 마륜리 |
성씨 시조 | 이정 |
입향 시조 | 이천근 |
[정의]
이정을 시조로 하고 이천근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세거성씨.
[연원]
광산이씨에서 최초로 펴낸 족보에서는 고려시대 때 진사를 지냈다고 하는 이정(李靖)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정의 생몰 연대나 행적 및 전후 세계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후 고려 충숙왕 때 이순백(李珣白)이 한림학사 사공상서 좌복야를 지냈고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광산이씨는 이순백과 그 형제인 한림공 이숙백(李淑白), 제학공 이승백(李升白)을 중심으로 하여 상서공파, 한림공파, 제학공파를 형성하고 있다.
상서공파는 세종 때 이조판서를 지내고 경창군(慶昌君)에 책봉되었던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등장으로 크게 번성하였고, 다시 이선제 아들인 양심당(養心堂) 이시원(李始元),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 성심당(醒心堂) 이형원(李亨元)의 후손들이 각각 양심당파, 청심당파, 성심당파로 분파하였다.
[입향 경위]
광산이씨가 순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것은 16세기 후반이었다. 이조원의 증손자인 이천근(李千根)이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벼슬을 단념하고 순천 지역에 낙향한 이후 순천 사회에 정착한 광산이씨는 향촌을 주도하는 집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입향조인 이천근의 손자들인 이기남(李奇男), 이기윤(李奇胤), 이기준(李奇俊), 이기현(李奇賢)은 모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동하여 순천의 향안(鄕案)에 올랐던 인물들이다. 이들에 의해 광산이씨의 순천 지역 내 위상은 확고해졌다.
[현황]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의 순천군조에는 광산이씨 20호가 해룡면 조례리에 사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1961년 순천향교에서 편찬한 『순천씨족보』에는 해룡면 조례리 이외에도 서면의 운평리·흥대리, 황전면 미초리, 황전면 금평리, 별량면 진목리, 해룡면 두지리, 쌍암면 장기리, 상사면 마륜리 등지에 거처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광산이씨는 998명이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순천시 상사면 마륜리에 이기남의 재실과 함께, 사촌 형제들인 이기윤, 이기준, 이기현 등의 임진왜란 당시 사적을 기록한 ‘광산이씨사충기적비(光山李氏四忠紀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