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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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東奎 |
영어공식명칭 | Park Dong-gyu |
영어음역 | Park Dong-gyu |
영어공식명칭 | Park Dong-gyu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영기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 박동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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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8년 - 박동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박동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장안마을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
활동지 | 박동규 활동지 - 전라남도 순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순천 출신으로 순천 지역 조규하 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 사항]
박동규(朴東奎)[1866~1908]는 전라남도 순천군 송광면(松光面)[현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장안(長安)마을에 거주하였다. 박동규는 일본을 물리칠 방안을 고심하다가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러던 중 1906년 6월에 전라북도 태인[현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의병을 주도한 최익현(崔益鉉)[1833~1906]과 임병찬(林炳瓚)[1851~1916] 의병장 등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후 전라도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했으며, 현 순천시 송광면 출신으로 임실군수를 역임한 조규하(趙圭夏)[1877~1908]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일으켰다. 이에 박동규는 1908년 전반 조규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벌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조규하 의병부대의 활동을 살펴보면 그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조규하 의병부대는 전라남도의 순천, 곡성, 구례, 보성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했는데, 순천 출신의 강진원(姜振遠)[일명 강형오(姜炯吾), 1881~1921] 의병부대, 보성 출신의 안규홍(安圭洪)[일명 안계홍(安桂洪), 1879~1910] 의병부대, 곡성 출신의 노임수(盧琳壽)[일명 노인선(盧仁先), 1876~1911]·신정우(申正雨)[일명 신정백(申正栢)]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일본 군경과 싸워 상당한 전과를 세웠다. 그러던 중 1908년 6월 23일 전라남도 동복(同福)과 보성 접경에서 일본 헌병대와 교전 중에 박동규는 전사한 것으로 전한다. 이 전투에서 의병 15명이 전사했는데, 그 중에 박동규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박동규는 1982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